성배를 찾아서
지혜로운 남편이라 해도 중년을 넘어서면, 그의 아내의 '지금-여기' 감정에 대처할 수 없다네.
왜일까?
이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서.
이성에 저주 받은 남편이 만약, 정보와 지식의 세계, 거기-그때(there-and-there)의 세계에 몰두한다면,
오랫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솟구치는 그녀는, 현실의 가장 선명한 세계, '지금-여기(here-and-now)'의 차원에서 살고 있지.
아내의 감정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그 판단 자체가 그와 아내와의 관계 실패의 원인이 되어 버리네.
자기계발서나 인문학적 지식을 뒤져 정답을 찾으려는 남편은, 그녀의 감정의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답 자체에 존재하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
이제 남편은 모든 합리적 판단, 보편적 사고, 상식을 버리고, 아내의 감정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만 해.
남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바깥에서 똑똑한 남편일수록, 집에 와서는 얼마나 어리석어지는지.
로버트 A. 존슨은 말했지, 남자들은 성배를 찾아 외부 세계로 여행하지만, 여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녀는, 여자는 그녀 안에 성배를 지니고 있으니까.
남자도 외부 세계에서 성배를 찾아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는 자신의 갑옷과 멋진 창만을 얻을 수 있어. 남자가 갑옷을 더 튼튼히 하고 멋진 창을 얻을수록, 그는 이미 내면의 세계에 대해 더욱 어리석어지고 있지.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외부 세계에서 죽음의 경쟁을 치른 후 많은 전리품을 얻을수록, 그의 내면에는 일곱 살을 넘지 못하는 '영원한 소년'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40대 중반 이상의 여성들이 모여,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그저 남편들의 어리석은 이야기를 나열하며 킬킬거리지.
남편들을 이걸 몰라.
모성애적인 아내 앞에서 7살짜리 아이처럼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은, 그녀의 눈에는 단지 조롱의 대상에 불과하다네.
밖에서 높은 권위가 집안에서는 7살의 영원한 소년과 등가를 이루지.
내 남편은 '영원한 소년'을 감추기 위해 이성과 보편성에 의존하는 지식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중년에 접어든 남편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거기-그때'와 아내의 '지금-여기' 감정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면, 게임 자체가 불균형해져.
남편은 아내와의 빙판을 깨려 하고 있네.
남편이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가부장적 권위, 폭력, 억압적인 분노의 표현을 통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