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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상처, 그리고 회복하는 BTS

중간영역, 중간현상, 중간대상(5)

이분법적 세계의 패배주의


우리가 아는 프랑스와 프랑스의 현실 사이에는 큰 갭이 있다.

우리가 아는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 고도의 철학적 체계를 갖춘 나라, 프랑스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나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나라, 여러 면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 등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현지에서 살아 본 사람의 이야기는 의외로 우리가 아는 그런 이미지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예술의 나라,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인 것까지는 맞아도, 여성의 지위나 민주주의 선도는 아닌 것이다.

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밤이 되면 여자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곳이 파리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성공적인 혁명을 여러 차례 성공한 나라로 알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혁명을 모두 실패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역사로 볼 때, 근대를 연 데카르트가 있었고, 멘느 드 비랑, 베르그송,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폴 리쾨르, 포스트모더니즘을 선언한 리요타르.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계통의 라캉, 롤랑 바르트, 들뢰즈, 미셸 푸코, 데리다 등이 있다.

프랑스혁명, 68 혁명 등 정치적 실패를 경험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대부분의 철학도 실패한 철학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들 중에 성공이나 실패의 관점과 무관한 철학자가 있다면, 멘느 드 비랑, 베르그송, 메를로 풍티, 폴 리쾨르 정도이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일종의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

내가 볼 때 그 패배주의는 바로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인 것 같다. 


이차대전의 후유증 


이차대전의 후유증이라는 면에서 볼 때, 이것은 프랑스뿐 아니라 전 유럽 및 미국에도 해당되는 개념이다.

그중에서도 프랑스가 두드러진 것은, 2차 대전으로 인해 독일에 의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파리를 점령할 때, 독일군은 중년 여성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 아이들, 소년이고 소녀고 닥치는 대로 강간하였다.

프랑스가 받은 그 정신적 후유증이 엄청나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미셸 푸코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그는 10대에 독일군에 의해 강간을 당한 후, 학교에서 자주 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자주 감금되었다.

그는 심각한 정신 질환을 가졌지만, 이를 지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로 마침내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청년 시절 자살 시도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이로 인해 스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은 그의 학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주제에 대한 푸코의 주요 저작인 [광기와 문명]은 정신 질환자에 대한 역사적 대우를 비판하며, 사회가 "광기"로 간주하는 것은 대체로 사회 규범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 질환이 인식되고 치료되는 방식의 진화를 추적하여 정신과 진료와 관련된 권력 역학을 강조했다. 

푸코는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였으며 그의 성적 취향은 그의 개인 생활과 학문적 작업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획기적인 시리즈인 "성의 역사"는 성이 어떻게 단순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역사적 힘과 권력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복잡한 사회적 구성인지를 조사한다. 

푸코의 분석은 사회가 성적 행동과 정체성을 규제하는 방식을 부각했으며, 그는 퀴어 이론 발전의 핵심 인물이었다 

1980년대 초 푸코는 HIV에 감염되었고, 이는 이후 에이즈로 발전했다. 

그는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하여 이 질병으로 사망한 최초의 저명한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투병 중에 푸코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밀을 유지했으며, 그의 죽음은 특히 지식인 내에서 AIDS 위기에 대한 더 큰 가시성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역 사회. 그의 파트너인 Daniel Defert는 나중에 그를 기념하여 프랑스 HIV/AIDS 서비스 조직인 AIDES를 설립했다.

푸코의 삶과 일은 그의 지적 추구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인 경험과 깊게 얽혀 있었다. 


자크 데리다(Jaque Derrida)

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는 프랑스의 지적, 문화적 삶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더 넓은 연구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데리다가 발전시킨 철학적, 문학적 분석의 한 형태인 해체는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다.

말 대 쓰기, 존재 대 부재 등 서구 철학 내의 근본적인 개념적 구별 또는 "반대"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데리다는 의미와 해석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철학, 문학, 법률, 정신분석,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에서 데리다의 작업은 후기 구조주의 사상의 중심이 되었고 저명한 지식인과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데리다의 사상은 학계를 넘어 프랑스 문화에도 스며들었다. 

이항대립을 해체하는 것에 대한 그의 강조는 예술, 문학, 심지어는 정치적 사상의 움직임에 반향을 일으켰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전통적인 내러티브에 도전하고 문화 제작의 기본 가정을 폭로하기 위해 해체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데리다의 '로고중심주의'와 '존재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은 정체성, 정치, 윤리에 대한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 

해체주의는 지배적 담론에서 특정 목소리와 관점이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강조함으로써 페미니즘, 퀴어 이론, 탈식민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데리다의 작업은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특히 전통적이고 분석적인 철학자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해체가 상대주의나 허무주의의 형태로 이어져 객관적인 지식과 일관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현대 철학 담론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프랑스와 그 외 지역의 광범위한 학문 분야와 문화적 관행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후기 구조주의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등장한 철학적, 문학적 운동으로 프랑스의 지적 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그 중요성은 수십 년에 걸쳐 진화해 왔다. 

이들 저명한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개발한 이론적 틀은 사라지지 않았다.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현대 사회 운동에 미친 영향은 동성애, 페미니즘, 퀴어 축제와 같은 왜곡된 성문화를 낳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그들의 영향력은 한풀 꺾인 채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이상한 죽음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들의 사상이 대중의 실생활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견고하던 구조주의가 데리다의 해체주의에 의해 해체되고, 푸코의 영향으로 엘리트들은 동성애로 전향했다.

특히 대학교수들은 멀쩡하게 잘 살아온 부부관계를 깨고 동성애 결혼을 하는 것이 한때의 유행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각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해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들뢰즈는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하였고, 데리다는 마약 중독으로 죽고, 미셸 푸코는 에이즈 감염으로 사망하고, 언어를 강조한 라캉은 실어증으로 죽었으며, 롤랑 바르트는 가벼운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이러한 기이한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지금은 그들의 사상과 아이디어는 계속해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의 폐해와 세계를 향한 회복운동


한국에서의 이상한 기류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것은 1995년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가 번역되면서부터였다.

그 책이 번역되고 1995년 우리나라의 어느 대학에서 시작된 동성애 열품은 우리나라에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의 본격적인 출현을 예고했다.

1995년이면, 이제 프랑스에서는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이상한 죽음으로 열품이 식어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사상이 시들해진 진원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 결혼, 소수자 차별금지 등을 헌법화 하고자 하는 이상한 기류로 흘러가고 있다

BTS의 등장과 중간영역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는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상이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들의 성공은 곧 실패다.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이분법적 이항대립을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체하였지만 스스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 니체의 실패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해결책은 오로지 이분법적 구조의 경직성을 완화해 줄 중간영역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중간영역에서 BTS가 등장하였다.

왜 미국과 유럽에서 BTS에 대해 열광하는가?

그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이분법적 구조의 폐해를 직접 당하여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이분법적 구조에서의 자아(ego) 대신에 포괄적인 중간영역에 있는 Self를 들고 나와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Be yourself.(너 자신이 돼라)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그동안 ego만 가지고 살아왔는데, BTS가 그들 내면에 깊이 잠들고 있는 self를 깨운 것이다. 

BTS의 열기가 전 세계적으로 식지 않는 것은, 바로 이 self 때문이다. 

BTS는 그동안 잠자고 있는 고고학적인 영토인 중간영역의 self를 깨웠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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