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영역, 중간현상, 중간대상(6)
세상에는 주체가 있으면 객체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둘이 전부라고 하면 세상은 매우 메마르고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 이래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각박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주체와 객체는 절대 동등하거나 대등하지 않다.
데카르트의 주체철학은 객체를 주체 밖에 있는 보잘것없는 그 무엇으로 본 것이다.
객체라 함은, 우유를 데웠다가 식으면 우유 위에 막이 생기는데, 이 막과 같은 것이 바로 객체(object)이다.
다시 말해 객체는 주체가 의미를 부여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근대적 개발논리가 나온다.
중세 시대에 자연은 신의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고, 신이 계실지도 모르는 신성한 곳이었다.
근대적 자연은 주체의 개발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데카르트적 주체는 이런 논리로 약소국가를 정복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제국주의적 식민지배 논리는 성경적 진리조차 왜곡하며, 자신들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은 유럽의 정신으로서 미개한 제3 국가들을 정복하여 개화시켜야 한다고 생각에 미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주체사상으로 제3 국가를 <I - it>의 관계로 보았을 뿐, 결코 <I-You> 관계로 보지 않았다.
제국주의적 망상은 세계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으로 나타났고, 그에 대한 반성은 제대로 이루 어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거대담론을 폐기하고, 이분법적 사고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것을 전복하고, 해체하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유럽 및 미국의 문화이자, 그들의 사상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왔고, 사상적으로는 후기 구조주의를 탄생시켰다.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극복방안은 이 둘이 출현하기 이전에 도널드 위니캇에 의해 제시된 바 있다.
영국의 아동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어머니와 유아 사이를 관찰한 결과 둘 사이에는 주체와 객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중간영역이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중간영역은 유아 초기일수록 환상의 강도가 강할 수밖에 없음이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일차적 모성몰두이다.
아기를 낳아 본 여성이나 유아를 양육해 본 부모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이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그 양육 공간에는 어머니와 유아만이 주체로 객체로 덩그러니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서로 공유하면서, 상호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그곳은 일종의 환상의 영역으로서 그 환상은 현실의 침범을 막아주는 곳이다.
위니캇은 이 환상 영역을 <중간영역>이라 칭했다.
이 중간영역에는 두 사람 각자의 환상형태의 생각들과 감정들 및 마음(mind)이 상호교환되고 있고, 공유한다.
아기가 출생하기 약 3주 전부터 일정기간 동안 어머니는 유아에게 집중하기 위해 현실을 놓아 버리고 아기의 마음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현실을 놓아 버린다.
그리하여 아기의 마인드에 어머니 자신의 마인드를 세팅하기 위해 비현실적 존재가 되고, 아기만을 생각하는 '광증의 상태'에 돌입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기가 마인드로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 주는 데, 그 일정 기간(두 달~ 세 달)의 상태를 '일차적 모성 몰두 상태'라고 부른다.
아기의 중요한 목표는 생존이기 때문에, 자신의 절체절명의 생존을 위해 어머니의 마인드를 강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기를 낳았다고 모든 어머니가 '일차적 모성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어머니 만이 아기와 환상을 공유하고, 일정기간 동안 융합상태(길게는 6개월간의 융합)를 유지한다.
물론 일차적 모성 몰두를 경험하지 못하는 어머니도 아기와 사이에는 중간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영역은 "개개의 인간 존재로 하여금... 도전받지 않는 중립적인 경험영역을 작고 인생을 출발하게 한다."([놀이와 현실] 도널드 위니캇, 30)
그렇지만 그렇게 생생하지는 못할 수 있다.
유아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그 중간영역을 어떻게 경험하는가는 그 아이가 향후 일평생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삶의 질을 좌우한다.
때로는 유아기에 이 영역에서의 왜곡은 향후 심각한 현실 왜곡을 일으키기도 한다.
(뒤의 글에서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할 것이다.)
중간현상이란 중간영역에서 아기에게 일어나는, 그리고 아기가 직접 경험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는 주체와 객체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와 경쟁하는 곳도 아니며, 유아는 전혀 도전받지 않는 영역에서 경험 그 자체로서 앞으로의 삶의 기반이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는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 주객 이분법적으로 상호교환은 없다.
심리적으로 유아는 어머니의 일부인 젖가슴으로부터 받고 있고, 어머니는 자신의 일부인 젖을 주고 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심리적 융합의 상태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것은 신체적 융합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아기는 전능환상을 체험한다.
아기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만 하면 젖이 내 입 안에 들어와 있다' 하여 '내가 젖가슴을 창조했다'는 창조자의 전능환상을 경험한다.
첫 6개월간의 과제가 아기가 어머니의 젖가슴 경험을 하면서 전능환상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6개월부터 9개월까지 과제는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환멸 또는 증오를 경험하는 것이다.
생후 9개월이 되면 아기는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유(젖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옛날의 어머니들은 젖꼭지에 고약을 발라놓기도 했다.
매정한 어머니를 미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결과 아기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사랑과 환멸의 통합'을 경험한다.
이 통합은 향후 모든 이분법적인 것에 대한 통합능력과 관련된다.
그 통합에는 전제가 있는데 곧 중간영역에서의 통합이다.
그래서 이 중간영역에서 통합이 제대로 경험되지 못하면, 환상영역에서 왜곡이 일어나게 되고, 별도의 환각을 일으키는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모두 이 시기(0~9개월)의 중간영역 경험과 사랑과 환멸의 통합 여부에 달려 있다.
중간 영역에서 아기가 경험하게 되는 중간현상에 대해 위니캇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놀이와 현실], 17)
1. 아기는 다른 한 손으로 외부의 물체, 말하자면 천이나 담요의 한 부분을 손가락과 함께 입으로 가져간다.
2. 어떠게 해서든 천 조각을 손에 쥐고 빨거나, 실제로 빨지는 않고 입에 넣고만 있기도 한다.
3. 아기는 처음 몇 개월 때부터 모직물의 보푸라기를 잡아 뜯거나 주워서 어루만지는 행위에 사용한다.
4. 맘맘 소리와 함께 웅얼거림, 첫 음악적 표현인 방귀소리 등과 함께 옹알이를 하게 된다.
어머니는 유아가 경험하는 중간현상을 보충해 준다.
자장가가 바로 그것이다.
중간현상은 바로 어느 정도 어머니의 부재를 보완해 준다.
<섬집 아기> 가사를 보면 중간영역에서 중간현상을 경험하게 해 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든대요.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는 결코 두 사람만 있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 중간영역이 있다.
중간영역에는 환상이 존재한다.
여기서 사랑과 미움의 통합이 일어나고, 이는 그 이후 모든 통합의 기초가 된다.
창조성과 상상력은 모두 이 중간영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환상이 존재하는 한, 어머니가 잠시 없어도 유아의 환상 세계 안에서 어머니는 존재한다.
사라진 어머니도 존재하게 만들어 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