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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영역, 사랑과 미움의 통합이 일어나는 곳

중간영역, 중간현상, 중간대상(7)

깊은 함정에 빠진 어느 모녀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무리 안 좋아도 상황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서로가 힘겨워 보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들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대체로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하지만, 비걱거리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들은 대체로 부친살해 환상을 가지고 있고, 딸은 모친살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살해 환상은 3~6세 사이 오이디푸스 시기에 발생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발현하는 시기는 청소년기이다.

청소년기의 반항이 바로 이러한 환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사춘기에 이른 아들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에 접어들면, 대화를 서로 회피하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은 생각보다 쉽다 

물론 당사자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되지만, 그래도 예후가 좋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 사이에 골이 한번 파이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 문제로 상담실을 찾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 사이의 복잡한 상황으로 오는 경우, 대개 상담자들도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담자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머니 말이 맞고, 딸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 이야기가 맞다는 판단밖에 못한다. 

나도 한 때는 그랬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정리를 해 준다.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각기 다릅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스토리입니다. 이 두 스토리가 하나의 스토리로 모아질 때, 두 분의 갈등을 끝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리로는 상담을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런 모녀 관계의 뿌리를 찾아내지 못하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그 뿌리는 바로 어머니와 딸 사이의 중간 영역의 문제에 있다

중간영역에 대한 이해는 의외로 모녀 관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나 사회적 이슈 등 일반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이상한 상황에 대한 통찰을 돕는다.   


사랑과 미움의 통합


어머니의 광증적 사랑, 일차적 모성몰두

중간 영역 개념을 제시한 위니캇은, 이 중간영역의 목표를 <사랑과 미움의 통합>에 두었다.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기 몇 주 전부터 아기를 향해 거의 미친 상태가 된다. 
현실을 놓아 버리고 아기에게 전적으로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는 아기를 낳고 몇 개월 동안 지속된다. 

위니캇은 이러한 상태를 <일차적 모성몰두> 상태라고 표현했다.


이 몰두는 어머니가 스스로 아기에게 집중한다기보다 아기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머니의 존재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기는 출생 후에도 자궁 속에 있을 때의 상태와 유사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정신력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어머니는 아기에게 오로지 사랑과 공감만 줘야 한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 기간이 최소한 3개월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6개월까지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6개월 동안은 어머니의 존재와 아기의 존재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어머니를 미워하기  

어머니라고 아기를 늘 사랑만 할 수는 없다. 

아기도 어머니를 늘 사랑만 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만 개입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미움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생후 6개월이 지나면, 아기의 몸은 자라게 되고 점점 무거워지면서 어머니는 아기를 예전처럼 늘 안고 다닐 수가 없게 된다.

가끔씩 아기를 혼자 놔두고 옆집에도 다녀오고, 슈퍼에 가서 장도 봐야 한다.

아기는 늘 함께 있던 어머니가 자주 사라지니까 화가 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면서 속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싹트기도 한다.

이처럼 아기는 자주 사라지는 어머니에 대해 '적절한 좌절'을 가지게 되지만, 그때부터 아기의 '정신적 활동'이 시작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머니와 아기 사이는 이러한 적절한 좌절과 아기의 정신적 활동이 개시되면서, 융합상태에 있던 존재 분리가 시작된다.

  

  "엄마가 안 해 주면, 내가 하면 되지, 뭐~"


이것이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자아 의식의 시작이다.


환멸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아기에게 적절한 좌절이 필요한 이유는, 어느 순간 대대적인 좌절이 올 때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 대대적인 좌절은 바로 '젖떼기'이다.

9개월이 되면 이유를 시작해야 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젖을 떼기 위해 젖꼭지에 '고약'을 바르기도 했다.

왜 그렇게 고약한 짓까지 해 가면서 젖을 떼야하는가 하는 항의가 있겠지만, 젖을 떼야만 그때부터 아기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젖을 늦게 떼는 만큼 아기의 말하기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젖을 떼는 과정에서 아기는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환멸과 증오를 경험한다. 

그것은 아기의 다음 단계의 발달을 위해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그 결과 아기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장 사랑하는 자를 가장 미워할 수 있어야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과 미움이 통합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과정이 아기가 출생한 지 1년 이내에 일어나는 중간영역에서의 일이다.

만일 사랑과 환멸(미움)의 통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중간영역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앞세우는 딸


위의 사례와 같이 어머니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딸이 있다.

반면에 이 딸은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이 딸의 내면세계에서의 관계는 그 반대일 수 있다.

그 딸의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미워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고,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커다란 미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다. 

그 딸은 왜 그러냐 하면, 바로 사랑과 미움의 통합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 딸은 외부에서 일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사회적 활동을 할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유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데 왜 어머니에 대해서만 원수처럼 대하는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은 존재 밑바닥에 깔려 있어 외부 세계에서는 그 받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잘해 낸다.

그렇지만, 어머니에 대한 통합되지 못한 미움이 늘 표면 위에 떠 있어, 어머니를 보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이것은 바로 중간 영역에서 사랑과 미움이 통합되지 못한 결과이다.

사랑과 미움이 통합되지 못한 결과, 존재 연속성이 깨져 있는 것이다.

존재 연속성이 깨지만, 늘 잘해 오다가 어느 특정한 상황이 되면 이상한 방향으로 돌변하게 되면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인격을 보이는 상황을 일으킨다. 

그러한 상황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가 봐도 좋은 어머니인데 그 딸만큼은 그 어머니에게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게 가혹하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데, 어느 순간 이상한 사상에 빠진다거나, 허무맹랑한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가 바로 사랑과 미움의 통합의 부재 때문이다.

사랑의 리비도가 흐르는 곳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미움의 리비도가 흐르는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이상한 상황에 이끌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간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중간영역이란 생후 1년 이내 심리적 구조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종의 정신증과도 같이 작동한다.

그러나 그런 중간영역을 혼돈을 겪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정신증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단지 사랑과 미움 사이 비연속성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데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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