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친코]에서 한수가 순자에게 은 도금한 쾌종 시계를 선물하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인 단서로 읽힐 수 있다.
한수 자신은 금으로 된 쾌종 시계를 가진 남자지만, 순자에게는 은 도금된 괘종시계를 선물한다.
이 선물은 단순한 물질적 가치의 차이를 넘어서, 그들의 관계에 깔린 계급적 차별과 한수의 태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한 선물 행위는 순자는 한수의 본처가 될 수 없으며, 그가 정한 위치에서 그의 첩으로서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 장면은 한수가 순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한수가 순자에게 준 은 도금 시계는 그가 순자를 대하는 태도의 핵심을 상징한다.
그는 자신은 금으로 된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순자에게는 겉모습만 금처럼 보이는 은 도금 시계를 선물한다.
이는 한수가 순자를 마음속으로는 사랑할지라도, 그녀를 자신의 공식적인 아내나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순자는 본처가 아닌 첩의 위치에 있으며, 그녀는 한수의 삶에서 결코 완전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순자가 받는 은 도금 시계는 그녀가 가진 사랑이 결코 한수의 사회적 위치나 지위와 일치할 수 없다는 상징적인 제스처이다.
한 마디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 장면에서 한수는 자신의 감정에 한계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본처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순자를 통제하려 한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문화적·정치적 지배를 행사했듯, 한수는 은 도금 시계를 통해 순자를 자신보다 두 단계 낮은 계급으로 설정하고, 그녀를 그 경계 안에 가두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은 도금된 시계는 또한 한수의 위선을 드러낸다.
그는 성공한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를 과시하며 조선인 여성인 순자를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순자와 온전히 나누지 않으며, 그녀를 그저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는 순자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모순된 태도를 유지한다.
한수의 이중적 태도는 은 도금 시계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그는 금시계를 가졌지만, 순자에게는 단지 금처럼 보이는 은 도금 시계를 준다는 점에서, 그녀를 온전한 파트너로 대하지 않겠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한수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유지하는 동시에, 순자와의 관계를 비밀스럽고 보조적인 것으로 유지하려 한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면서도 조선의 문화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려 한 식민 지배의 메커니즘과도 닮아 있다.
한수는 은 도금 시계를 통해 순자에게 ‘척도’를 설정한다.
만일 그 시계를 선물로 받는다면, 그녀는 한수와 같은 수준에 설 수 없으며, 그가 주는 시혜에만 의존해야 하는 첩으로서의 위치에 갇힌다.
이 장면을 통해 드러난 두 사람의 관계는 소설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된다.
한수는 순자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본처와 자녀가 있는 일본에서의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조선인 순자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거나, 그녀와 완전한 가정을 꾸리려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저자는 이를 조선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것 같다.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흡수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면서도, 조선을 일본과 동등한 국가로 여기지 않았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그들의 통제 하에 있어야만 했다.
순자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수와의 관계에서 점점 더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녀는 비록 한수와의 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순진한 마음을 가졌지만, 한수의 본처와 자녀에 대한 현실을 직시한 후에는 그와의 관계를 명확히 끊고자 결심한다.
이는 마치 조선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도 주권 의식을 잃지 않고, 궁극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한 역사적 맥락과 일치한다.
순자는 비록 한수에게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그의 첩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독립적 삶을 찾아간다.
한수는 계속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순자를 통제하려 하지만, 순자는 한수의 선물과 보호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한수의 첩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려는 자주적 의지를 상징한다.
그녀의 이러한 결단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조선의 독립 의지와 평행선을 이루며, 은 도금 시계는 이 관계의 미묘한 권력 차이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