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2시.
창문 밖은 이미 깊은 어둠에 잠겼지만, 침대 위의 그는 여전히 눈이 반짝인다.
낮 동안 사람들의 말과 표정,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머릿속에서 끝없이 재생된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깨어 있다.
마치 하루 종일 꽉 움켜쥐었던 리모컨을 밤이 되어서야 스스로에게 넘겨받은 듯,
이제야 “나만의 채널”을 틀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밤을 자주 보낸다.
낮 동안은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느라,
자신에게 리비도(정신 에너지)를 쓸 수 없다.
그러다 밤이 되면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지만,
그 순간 눈은 멀뚱멀뚱 뜨이고, 마음은 오히려 더 분주해진다.
“선생님, 잘 수가 없어요. 눈을 감으면 불안이 몰려와요.”
그는 소파에 앉아 무릎을 감싸 쥔다.
나는 잠시 말없이 그의 호흡을 따라가며,
‘이 사람이 잠을 거부하는 건 피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깊이 내려가면 자신이 부서질까 두려워서구나’ 하고 느낀다.
정신분석에서 이차 사고 과정은 현실 원칙에 기반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통제된 사고를 의미한다.
욕동이나 본능적인 충동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불필요한 불안을 줄여주며, 우리가 ‘사회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돕는다.
심리 구조가 건강한 성인이라면, 이차 사고 과정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가능하다. 정신구조가 충분히 발달하여 안정성을 확보한 성인은 일시적으로 합리적이고 통제된 사고 과정에 대한 에너지 집중을 풀고, 본능적인 경험이나 무의식적인 상태에 자신을 맡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잠에 드는 순간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적 절정 같은 때, 우리는 의식적인 통제를 풀고 본능적인 경험에 자신을 맡긴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필요하면 다시 통제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심리 구조는 얇고 깨지기 쉽다.
그래서 이차 사고 과정을 잠시라도 포기하는 것이 두렵다.
잠에 들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고,
통제를 내려놓는 순간 혼란과 불안이 덮쳐올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에 자신을 맡기지 못하고,
늘 긴장 상태로 깨어 있으려 한다.
그 결과,
잠이 들기 전 머릿속은 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자기 반응 분석으로 가득 차고,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깨어 있는 불면의 밤이 반복된다.
자기애적 성격장애 환자의 경우, 이차 사고 과정이 정신의 "얇은 표피층"만을 점유하고 있어 취약하며, 욕동을 정교화하거나 중화하는 능력이 불완전하다.
이들은 잠이 드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성적 절정감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들의 이차 사고 과정이 약하고 욕동 통제 능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의식적인 통제를 놓으면 혼란과 불안에 휩싸일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중에는 아예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잠이 엄습해 올 때까지, 자신의 의식이 활동하는 한, 스스로 침대에 눕지 않는다.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 때문에 이차사고과정(의식)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그 불안을 그냥 같이 느껴볼까요?”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다.
몇 번의 깊은 호흡 후, 그는 말한다.
“선생님, 지금은… 조금 편안해진 것 같아요.”
그 순간, 아주 작은 틈이 열렸다.
이차 사고 과정을 내려놓아도 당장 무너지지 않는 경험.
그 틈이 쌓여야만 깊은 잠이 가능해진다.
치료에서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이차 사고 과정을 충분히 강화하고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충분히 단단한 내면화가 이루어지면, 비로소 이 사람은 “이제 잠시 나를 맡겨도 안전하다”는
내적 신뢰를 얻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심리적 성숙과 안전의 징표가 된다.
다시 말해, 깊이 잠든다는 것은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던 사람에게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회복의 선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