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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하이힐 신은 여자:"너, 나 놓친 거 후회할거야"

중년 여성의 억눌린 자아와 회복, 여성성발견

꿈 내용


남편이 내 뒤에 서 있고, 앞에 걸어가는데, 여자 세 명이 있고, 중간에 내가 있다. 아주 날씬하고 볼륨감 있는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여성이 나이다. 내 옆에 있는 애가 딸인지, 아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이렇게 괜찮은 여자야 약 오르지, 나 이렇게 섹시하다. 너 후회할 거야라고 으스대면서 뒤를 돌아보면서 남편 표정을 본다. 그때 내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 알아? 하는 생각을 했다. 걸어가면서, 히스테릭한 태도로 으스댄다. 여자 특유의 꼬리 치는 듯한 여우 같음. 애교와 아양을 떠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착한 딸과 헌신적인 아내로 살아온 당신에게 무의식이 보내는 도발적인 초대장


우리는 종종 꿈이라는 무대 위에서 평소에는 절대 입지 않을 옷을 입고, 절대 하지 못할 말을 내뱉곤 한다. 여기, 한 중년 여성의 꿈이 있다. 현실에서는 책임감 강한 가장이자 헌신적인 어머니로 살아온 그녀가 꿈속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꿈은 단순한 잠꼬대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혹은 억눌러왔던 '어떤 여자'의 화려한 귀환이자, 스스로에게 보내는 아주 도발적인 러브레터이다.


무대 위, 하이힐을 신은 낯선 여자


꿈의 장면은 이렇다. 그녀는 남편을 뒤에 세워두고 앞서 걸었다. 양옆에는 다른 여자들이 있지만, 주인공은 단연 가운데 서 있는 '나'이다. 그런데 모습이 낯설다. 현실의 펑퍼짐하고 편한 옷 대신, 아주 날씬하고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있다.


그녀는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남편의 표정을 살피며 속으로, 아니 온몸으로 외친다.


"나 이렇게 괜찮은 여자야. 약 오르지? 나 이렇게 섹시해. 너 나 놓치고 후회할 거야."


남편으로부터 한 번도 사랑의 시선을 느낀 적이 없는 여성. 바꿔 말하자면, 한 번도 자신의 여성성을 남편에게 드러낸 적이 없는 여성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하는 중, 첫 상담에서 내 상담의 핵심 포인트를 알고 있는 그녀가 분석 트리거를 이렇게 제시했다.


"나와 내 남편의 관계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성성의 관점에서 정립해 달라."


그녀는 스스로 '여우 같다'라고 느낄 만큼 꼬리를 치고, 히스테릭할 정도로 으스대며 아양을 떤다. 꿈에서 깬 뒤에도 그 '뻔뻔한 자신감'의 잔상은 강렬하게 남았다. 도대체 내 안의 무엇이 이런 장면을 만들어낸 걸까?

하이힐, 억눌린 여성성의 부활


현실에서 그녀는 아마도 '모성'이라는 이름의 단단한 갑옷을 입고 살았을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을 챙기고, 아이를 키우느라 정작 '여자로서의 나'는 옷장 깊숙한 곳에 밀어 두었을 것이다.


꿈속의 '날씬하고 볼륨 있는 몸매'와 '하이힐'은 바로 그 옷장 문을 박차고 나온 '이상적 자아(Ideal Self)'이다. 이것은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다.


"나도 여자로서 매력적이고 싶다",

"나도 욕망이 있는 존재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는 생명력(Eros)의 외침이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납작해졌던 그녀의 여성성이 꿈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빌려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아버지의 딸이 벗어던진 갑옷: '모성'이라는 이름의 남성성


사실 당신의 지난 삶을 지탱해 온 것은 부드러운 '여성성'이 아니었다. 무능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당신은 가족을 지키는 '전사'가 되어야 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아버지의 딸(Father’s Daughter)'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주지 못한 보호와 안정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위해, 당신은 여성의 부드러움 대신 남성의 논리와 강인함을 선택했다. 보통 딸은 어머니의 딸이 많은데, 드물게(요즘은 20대에는 드물지 않다) 아버지의 원리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경우의 여성이 있다. 이들은 세상에서 경쟁에 매우 능하고, 여성성을 억압하는 대신 남성성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활동적이며 뭘 하더라도 유능하며 성과가 높다.. 남성성을 많이 사용하는 여성이 가정에서는 모성성을 많이 사용한다. 여성에게 있어 모성성과 남성성은 상호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 마치 짝패와도 같다. 그녀 역시 겉으로는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모성'처럼 보였지만, 내면의 엔진은 치열한 생존 본능과 책임감이라는 '남성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갑옷을 입고 전쟁 같은 삶을 치러내는 동안, 정작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여자아이'는 내면의 가장 깊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내가 다 해결해야 해.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끝이야."


이 무거운 '주문'이 자신의 여성성을 억눌러왔을 것이다. 하지만 꿈속의 당신은 이제 하이힐을 신고 선언한다. 이제 그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겠다고. 누군가를 지키는 '아버지의 대리인'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여자'로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딸은 바로 '자아이상'으로서 자아에 불과했던 것이다.


"너, 후회할 거야"라는 말에 담긴 진심


꿈속에서 남편은 그녀의 뒤에 서 있다. 그녀는 뒤돌아보며 남편의 표정을 확인이다. 이 시선 교환은 관계의 역설을 보여준다.

이 여성은 다른 남자에게 여성으로 비치는 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꿈은 나를 여자로 봐주는 사람은 오직 남편이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약 오르지? 후회할 거야"


라는 말속에는 통쾌한 복수심과 함께, 짙은 슬픔과 갈망이 배어 있다.


"나를 좀 봐줘. 내가 밥하고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라는 걸 알아봐 줘."


그녀는 남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라고 묻는 대신 꾹꾹 눌러왔던 분노와 억울함이, 꿈속에서는 "너, 나 같은 여자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해!"라는 당당한 선언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내 안의 '여우'를 허락하다


그녀는 꿈속의 자신을 보며 '여우 같고 히스테릭하다'라고 표현했다.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여우'나 '히스테리'는 부정적인 단어였을지도 모른다. 얌전하고 착실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이 장면은 매우 건강한 신호이다. '히스테릭함'은 억눌린 감정이 댐을 무너뜨리고 터져 나올 때 발생하는 거친 에너지이다. 너무 오래 참았기에, 터져 나올 때는 다소 과장되고 요란할 수밖에 없다.

나의 오랜 분석경험으로 볼 때, 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 히스테리가 끼여 있다. 분석가들이 이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글쎄, 힘들어한다기보다 그 포인트를 발견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다. 프로이트의 여성성 관련 논문을 읽어 보면, 여성성 인식이 소아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칼융은 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 연결성이 없다. 그래서 모성성에 관한 분석 따로, 여성성에 대한 분석 따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 히스테리 개념이 들어오는 순간, 여성들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녀의 무의식은 이제 선언하고 있다.


"이제 착한 척, 괜찮은 척은 그만할래. 나는 좀 여우 같아도 되고, 좀 뻔뻔해도 돼. 나는 내 매력을 뽐내고 싶어."


첫 상담에서 이렇게 요염함을 자신감 있게 드러내었으니, 앞으로의 분석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발달해 갈까 짐작된다.

마무리 : 스스로에게 건네는 '괜찮은 여자' 인증서


이 꿈은 남편에게 보내는 경고장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인증서이다.


꿈은 그녀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봐, 너는 껍데기만 남은 엄마가 아니야. 너의 내면에는 여전히 이렇게 섹시하고, 당당하고, 남편을 압도할 만큼 힘 있는 여자가 살아 숨 쉬고 있어."


그러니 이제 현실에서도 하이힐을 신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진짜 구두가 아니더라도 좋다. 내 안의 욕망을 긍정하고, 나의 매력을 표현하고, "나 꽤 괜찮은 여자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마음의 하이힐 말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볼륨감 넘치고 근사한 여자, 여성성이 풍부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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