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예보가 뜨는 날이면 두근두근.

by 공기북

황선우, 김하나 작가님의 ‘여자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에 윗집 누수 이야기가 나온다.

윗집 싱크대 아래 수도 벨브가 열려 작가님 집 천정에서 물이 줄줄 새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글을 읽자마자 혹시 나도 모르게 내 집 누수로 인해 아랫집이 피해를 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됐다. 그러고는 관련된 보험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세탁기과 건조기가 싱크대 수도 벨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들었다.


싱크대 하부장 가림막을 열고, 손전등을 비춰보며 어디 축축한 데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을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그해 여름, 태풍이 오던 날 비가 수직이 아닌 90도 각도를 틀어 우리 집 창문을 그야말로 냅다 쳐내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오니 거실 창문틀위로 비가 줄줄 새고 있었는데, ‘뭐여! 워터파크가 따로 없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마룻바닥에는 반려묘를 위한 매트를 전체 깔아두고 있어서 아랫집으로 누수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집만 누수가 있는 건 아니었고 같은 층 몇몇 집은 복불복 마냥 누수 피해가 있었다.

‘내 집만 그런 건 아니군.’이라는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얼마나 못된 심보인가 싶다.


부랴부랴 냄비와 수건, 빈 김치 통을 꺼내 빗물을 받았다.

우리 집 고양이는 이게 무슨 물벼락이냐며 떨어지는 빗물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 꼬리가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복덩아, 이게 맞아?’ 어리둥절한 반려묘에게 괜히 심술어린 말을 뱉었다.

밤새 냄비와 김치 통을 비워내며 반려묘와 함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고 나는 출근을 했지만 반려묘는 하루 종일 자더라.

(다음 생엔 집고양이라도 태어나야겠다.)


관리소에 알리고 일년이 지나서야 외벽 실리콘 보수작업을 했는데 그 이후에 몇 번 더 빗물이 샜고 다시 한 번 공사를 했다. 태풍 예보를 확인할 때마다 심장이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출근을 하기 전 단단히 대비를 한다. 예닐곱 장의 수건을 창문틀이며 바닥에 촘촘히 깔아두고, 실시간 누수 여부 확인을 위해 홈캠을 창문근처에 바짝 배치한다.

반려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지만 이럴 땐 누수확인이 먼저다. 빗물이 새기라도 하면 집으로 당장 달려가야 한다.

사실 집으로 간다한들 누수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몸이 현장에 있어야 안심이 될 것이므로.


여름을 싫어하지 말자고, 그래도 사랑해보자고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이 싫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생긴다.

빗물이 통통 유리창을 때릴 때 멍하니 비멍을 하면 좋겠지만 비멍이 아닌 마음에 피멍이 드는 것 같다.

어쩌다 이런 집에 이사를 왔는지, 더 꼼꼼하지 못한 나를 자책한다.


그래도 올해 여름에는 아직까지 빗물이 새지 않았다. 몇 번의 폭우가 지나갔고, 수십 번의 한숨과 안도를 지었다. 그리고 곧 폭우예보가 있다.

방송사마다 일기예보에서는 폭우대비, 이례 없는 물 폭탄, 수도권 집중이라는 말이 오고가고 대비를 단단히 하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이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비라야 기껏 수건 몇 장 깔고 홈캠이나 설치하는 것이다.


이틀 후에나 있을 폭우에 벌써부터 심장이 나대는 걸 보니 월요일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음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 알 테지.

태풍이 오던, 폭우가 쏟아지던 일 년 내내 뽀송한 집을 가진 자는 절대 모르겠지.


다음 집은 뽀송하다 못해 차라리 건조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소방호수로 뿌리는 듯 한 빗줄기에도 절대 장벽 같은 집을 찾을 것이다.


집에서 완전한 안전함과 평온함을 느끼며 완벽한 ‘비멍’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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