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사람이라, 물건이 많지 않다.
자취생활을 오래하면서 정리와 청소는 기본기로 장착이 됐는데 이것도 유전자의 힘인 듯 하다.
아빠를 비롯해 고모, 삼촌까지 모두 ‘깔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어릴 적 명절에 시골집에 가면, 도착하자마자 청소부터 했다.
시골집 특유의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마당과 방 안(그건 우리 집뿐 아니라 시골의 많은 집들이 그랬다.)을 어른들이 정리하고 버리면, 할머니는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멀쩡한 걸 왜 버리노!” 하며 역정을 내셨다. 물건마다 정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물건에 집착이 없어서인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쉽게 처분한다.
구매 후 1년 동안 쓰지 않으면 ‘정리 후보’가 된다.
집안 어느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보기 싫어 새것에 가까운 물건들은 곱게 포장하여 기증을 한다.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새로운 물건들을 살 때에는 기존의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물건들이 집안에 쌓이지 않는다.
늘 깨끗하게 정돈이 되려면 이런 습관은 버릇처럼 들여놔야한다.
유일하게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면 그릇이다. 자취때부터 예쁜 식기에 차려먹는 걸 좋아했다.
월급날이 되면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그릇 쇼핑을 먼저 했다.
일본 식기는 특유의 정갈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어 자주 구매했다.
접시, 보울, 컵을 자주 구매했는데 그러다보니 주방 수납장에 그릇이 꽉 찼다.
몇 해 전 이사를 하면서 소유한 식기의 반을 처분하고 최소한의 식기들만 가지고 있다.
이후에는 식기쇼핑은 거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욕심나는 건 컵이다.
예쁜 컵에 티나 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기분 좋게 시작되거나 마무리되는 기분이다.
어느 컵을 사용할지 고르는 과정 또한 즐겁다.
소소한 일인데, 즐거움은 크다.
사무실에서도 주기적으로 컵을 바꾼다.
뚜껑 있는 컵, 유리컵, 법랑컵…내가 고른 컵들은 대부분 작다.
동료는 그걸 보며 “에소프레소 잔 아니죠”하며 농담을 한다. 가져가는 컵 마다 예쁘다는 칭찬도 해준다.
내가 선택하는 컵들은 작은 편인데 인스턴트 라떼를 타 마시기 딱 정당한 300ml 안쪽 컵이다. (수년째 바뀌지 않는 라떼가 있다. 단종되면 큰일이다.)
최근에는 유리컵 특히 초록색에 꽂혀서 얼마 전 전시회에 갔다가 굿즈 컵도 하나 사왔다. 초록 유리컵이라 물을 마실 때 가장 예쁘다.
그릇장을 열 때마다 나란히 줄지어 있는 컵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으니 따뜻한 느낌의 도자기 컵을 하나 사야겠다. 열기를 오래 보관해주기도 하지만 두 손으로 감싸면 포근한 느낌이 좋다.
출근 후 커피나 티를 마실 때 예쁜 컵을 사용해보시라. 일상적인 아침이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 ‘가격’도 ‘브랜드’도 아니다. 그저,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가.
예쁜 컵 하나로 하루가 달라진다면, 그건 충분히 소장할 이유가 된다.
어쩌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에도 이렇게 작은 사치는 꼭 필요한지 모른다. (미니멀리스트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4계절의 옷과 잡화가 옷장 한칸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