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돌본 다는 것

by 공기북

출근을 하면 사무실에서의 루틴이 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은 후 창가에 줄지어 있는 화분들을 하나씩 돌본다. 주말동안 말라죽지는 않았는지, 얼마만큼 잘 자랐는지를 확인한다.


흙이 바싹 말라 있는 식물에는 물을 듬뿍 주고, 아직 잎이 통통한 다육식물은 분무기로 살짝 물만 뿌려준다. 고사리과 식물, 다육이 식물, 덩굴식물, 관엽 식물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삭막한 사무실에 호사스럽게도 사계절 내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는가하면, 죽었나 싶었는데 봄이 되면 새싹을 틔우는 식물도 있다.


매년 새로운 식물이 사무실에 들어온다.

프로그램으로 인해 들어오는가 하면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한다. 사실 사무실에서 생겨나는 식물은 직원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들이라, 결국 관리는 내 차지가 된다. 나는 이를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인다.


물과 햇빛, 바람만 있으면 이외 따로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자기의 몫만큼 잘 자라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라기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식물은 단순하다. 단순함에서 기쁨을 주니 가치롭다.


많아지는 식물을 딱히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사무실에서는 창가에 쪼르륵 세워두고, 그 중에서 해를 직접적으로 받지 않아도 되는 작은 식물 하나는 내 자리에 두고 돌본다.

업무에 시달리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작은 잎을 조롱조롱 달고 있는 게 귀엽다.

이 아이는 주무관이 선물로 준 미니미한 식물이었는데 조금 자랐다 싶어 분갈이를 했더니 시들시들 죽어갔다.

이때에는 다시 작은 화분으로 심어주면 잘 자란다는 말을 들어, 원래 사이즈로 작은 화분에 심었더니 어느새 한 뼘 가까이 자랐다. 참 희한하다.

사람은 늘 넓은 곳에서 살기를 원하는데, 식물은 자기 몫보다 큰 곳에서는 오히려 힘이 빠진다니.


여름날에는 식물관리가 쉽지가 않다.

강한 해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니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확인하면 금세 시들어버렸거나 고사리 과는 특히 잎이 타버린 것들도 있다. 흙이 바짝 말라, ‘나 죽네.’하는 식물들에는 물을 듬뿍 준다. 그럼 점심 지나고 보면 새파랗게 다시 생기가 돌아와 있다.


장마철에는 물을 주는 걸 깜빡해도 여전히 흙이 촉촉하다. 여름날은 화분마다 꽂아둔 나무젓가락이나 이쑤시개 끝을 보고 흙의 마름정도를 체크한다.

물을 주며 칭찬도 한마디씩 해준다. ‘아이고, 잘 자랐네.’ ‘기특하네. 너는 너 몫을 하는구나.’ 하며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어쭈쭈쭈’를 해줘야 얘네들도 자기가 사랑받는 줄 알고 무탈하게 자란다. 식물도 동물도 사랑받음을 알아야 모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다.


한참 화분을 돌보다보면 이 식물들한테는 ‘주말동안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싶어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못 느낄 때가 있지만 이렇게 식물들을 돌보다보면 나 없이는 얘네들이 다 말라 죽겠거니 싶다.

그럼,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고 싶다면 식물을 키워보길 추천한다.

내가 실수를 하던지 잘못을 하던지 해와 물과 바람을 적절히 주기만 하면 쑥쑥 자라 보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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