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끝나기 전에 미친듯이 해봐야 할텐데

by 공기북

삶이 버겁거나, 지쳐있거나 혹은 내가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운동선수의 영상이나,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본다.

내가 요즘 딱 그렇다.

작심삼일이라는 단어는 미래의 나를 보고 만들어진게 아닐까 싶을만큼 끈기의 ㄲ자도 못땔만큼 금방 포기해버리니까.

물론 인생 찍먹하는 거 나는 찬성이다. 내 인생이 찍먹을 버릇처럼 하니까.

이것저것 다양한 거 경험하면서 생각이 커지는 것도 있다. 원래 이론으로 배운 것보다 경험으로 배운 게 평생 기억에 남는 것이다.

노후를 생각하면 살짝 겁이 난다.

내 또래 사람들은 노후를 탄탄히 준비하는 것 같은데 나만 한없이 가벼운 통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다 신나게 살다가 노후는 신나게 골로 갈 판 이다. 매사 진지하게 사는 것 보다는 어쩌면 더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더 신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회사-집이라는 일상에서 조금씩 옆으로 삐져나가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다고 정말 괴짜처럼, 신나는 것에 몰입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쫄보라 성실히 회사생활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엄마는 내게 늘 그랬다. ‘놀려면 화끈하게 놀던가, 공부를 하려면 화끈하게 하던가. 뭐든 끝장을 봐야 성공한다.’

그래 엄마 말이 백번 옳소!!

원래 어중간한 인간이 어중간한 삶을 산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화끈하게 놀고 ‘노는 것’에 미쳤어야 하는데. 그럼 진짜 성공했을 텐데.

여기서 공부는 왜 빼놓느냐면. 공부 머리는 따로 있으니까.

엄마는 ‘니는 공부 머리는 아이다. 서울대 가는 애들은 다 따로 있다.’ (어머! 오마니, 서울대가 뭐예요?)

‘네네. 맞습니다요.’ 애들 독서실 가서 새벽까지 공부할 때 물론 나도 새벽녘까지 독서실은 다녔더랬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나름 늘 중상위권에 맴맴 돌았다. 진짜 맴맴 돌기만 했다.

독서실 갈 때 가방에 박하사탕 대형봉지 하나 챙기고 공부하는 애들 책상 위에 사탕 한 움큼씩 놓아주고는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 가라고. 그걸 왜 내가 신경 쓰는 건지, 지나 잘하지.

주변에서 나는 ‘쟤는 조금만 더 하면 좋은 대학 갈 것 같은데. 왜 저러지’이런 아이였다.

그 조금만 더하면 되는걸 안 하는 약간 삐딱한 애였다.

누구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공부하며 똥 싸는 시간에도 영어단어 외우고 졸도까지 했다던데, 나는 잘 때 자고, 똥 쌀 땐 똥만 싸는 아이였다.

그래서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사는 걸까.

친구들은 내가 히피처럼 살 줄 알았단다. 대학교 시험 기간 때도 소설책을 읽고 훌쩍 바다를 본다며 고속버스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보겠다고 이러고 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데, 좀 더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것에 ‘몰입’을 하고 싶다.

주변의 소음을 잊고 시간의 흐름도 잊고 그저 한 방향으로 깊이 빠져들고 싶다.

글재주는 없으니 쓰고 배우고 다듬고 다시 배우면서,

읽고 싶고 재미있는 글을 짓고 싶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끝장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기만의 분야에 끝장을 본 사람들이 부럽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시간이 부족하다, 건강이 좋지 않다, 바쁘다 등의 이유로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그 벽을 넘지 못한 날들을 돌이켜 보면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다.

늘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어 했으면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면서 영어도 흐지부지, 일어도 흐지부지했다. 뭔 놈의 삶의 태도가 파스텔 컬러마냥 뚜렷하지 않은지. 파스텔은 예쁘기라도 하지.

아마도,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미쳐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글 쓰는 거에 미치든, 공부에 미치든 해보자 싶다. 아니 해보자. 하자.

여기에 같이 붙어서 할 사람! 여기여기 붙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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