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물건으로, 집안에 빈 공간을 많이 두고 살고 싶은 나는 주기적으로 집안을 구석구석 정리한다. 한 달에 한 번 씩 물건을 정리해도 늘 정리할 것들이 남아 있다.
그중 신발장은 약간의 불편한 마음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널널하게 비워놓고 싶은 공간인데, 늘 신발과 잡다함으로 꽉 차 있다.
발은 두 개인데, 신발은 열 켤레나 가지고 있다. 옷도, 물건도 별로 없는데(컵은 제외하고) 신발은 왜이리 많은지 지네도 아니고 이 많은 신발을 골고루 다 신어보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신발은 옷에 따라, 장소에 따라, 활동성에 따라, 계절에 따라 구분해서 신다보니 한두 켤레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열 켤레의 신발은 저마다의 쓰임이 있다.
구입한지 10년쯤 되는 목 짧은 등산화가 한 켤레. 제대로 된 첫 등산이 폭설로 온통 눈꽃이 펴 아름다웠던 한라산이었다. 그때 신었던 등산화라 소중하다.
앞으로 내가 등산을 할까? 아무래도 등산화를 신을 만큼의산행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쉬이 버릴 수 가 없다등산화를 볼 때마다 눈 내린 한라산을 뽀독뽀독 밟았던 기억이 떠올라 몇 번이고 정리봉투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뉴발란스 운동화가 네 켤레.
발볼이 넓고 무거운 신발은 못 신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브랜드다. 신을 때마다 기분이 좋고 청바지, 슬랙스, 트레이닝, 원피스 등 어디에도 들뜨지 않고 착 하고 발을 감싸준다.
오래신은 운동화는 나의 발을 가장 잘 이해해준다.
네 켤레 모두 계절마다 잊지 않고 골고루 신어준다. 내가 간 길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아디다스 단화가 한 켤레. 이것도 산지가 몇 년이나 됐는데 단화를 자주 신지 않으니 여전히 뜯어진 곳 없이 성하게 잘 신고 있다. 키가 작은 내가 단화를 신을 때는 살짝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외 로퍼가 한 켤레, 낮은 구두가 한 켤레, 그리고 샌들이 한 켤레, 크록스가 한 켤레 있다.
이렇게 많은 신발 중 애증의 신발이 있다. 여름마다 꺼내는 브라운색 가죽 샌들. 발목 스트랩에 통기성도 좋고 무엇보다 고급스러운 신발 색이 예쁘다. 여름날 맨발에도 가을에 양말을 매치해서 신어도 예쁜 샌들이다.
문제는 내 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발볼이 넓은 나에게는 신을 때마다 꽉 끼는 신발이라 얼마 걷지 않고 양 발사이드가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물집이 여기저기 잡히는 신발이다.
서촌을 산책할 때 이걸 신고 나갔다가 혼이 난적 있다.
분명 오래 걸을 것도 알았고, 그러기엔 맞지 않는 신발임을 알았음에도 예쁘다는 이유로 신고 나갔다 골목길에 주저 않아 밴드를 여기저기 붙이고 절뚝거리면서 돌아다녔다. 대여섯 시간을 이러고 걸었으니 발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그럼에도 이 신발을 버릴 수 없던 것은 예뻤기 때문이다.
편한 신발을 선택했다면 아플 일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아픈 걸 알면서도, 불편할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택한다.
내 신발장에 있는 열 켤레의 신발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걸어온 길이자,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 담겨있다. 때로는 편안함을 때로는 불편함을 선택하며 신발의 밑창이 닳은 만큼 나는 세상의 경험이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