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외부 강사를 섭외한 적이 있다.
교육이 모두 끝난 뒤 그 강사님은 나에게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배려라는 걸 사람으로 표현하면 팀장님인 것 같습니다.”문자를 보자마자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동시에 궁금했다.
‘어떤 면에서 내가 그렇게 보였을까?’ 나는 스스로 배려나 다정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배려를 현명하게 한다는 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배려심이 깊다는 말은 자신의 수고로움이나 불편함을 감수하며 타인을 위한 행동을 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모습이 숨어 있다.
직장에서 함께했던 동료가 있다. 그는 마치 배려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빚어낸 듯 한 존재였다. 사무실 쓰레기가 쌓이면 가장 먼저 나서서 정리했고, 선택의 순간에는 늘 남은 것을 골랐다. 교육실 정리도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도맡았다.
‘저 사람은 정말 배려로 만들어진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본인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타인을 돕는 일이 반복되자, 점점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내게 ‘배려’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참된 배려는 ‘나를 지키는 것’에서 시직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나를 먼저 아끼고 단단히 서 있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배려는 곧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나를 먼저 지키는 것’을 곧잘 오해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이기적이다, 개인주의적이다”라고 쉽게 낙인찍는다.
특히 조직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겉으로는 배려와 협력을 강조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우선하는 법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경쟁사회 속에서의 ‘내가 우선 되어야 한다.’라는 건 자연스럽게 익히지만
“내가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내가 나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고찰과 이해를 했다는 것이며, 자기만의 심지가 곧게 형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이 없는 많은 이들이 조직사회속에서 남을 위해 배려하다가 정작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위하는 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스스로 지쳐버릴 것이다.
진짜 배려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과 동시에 나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나를 먼저 단단히 지켜낼 때, 그제야 오래 지속되는 배려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