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는 하는데, 하지는 않습니다.

by 공기북

운동은 전혀 하지 않지만 운동은 좋아한다. 달리기를 싫어하지만 달리기를 좋아한다. 걷기는 하지 않지만 걷는 걸 좋아한다. 요가는 모르지만 요가를 좋아한다. (운동이든 걷기는 가을과 겨울에 집중적으로 며칠만합니다. 이걸 한다고 하는게 맞나 싶지만서도)


실제로 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다. 관심은 있지만 애써 하지는 않는 것들이 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지만, 짝사랑처럼 좋아만 하는 건데 심리적 부담도 없고 실천하지 못했다고 죄책감이 들지도 않고 순수하게 좋아하만 하는 것이다.


지하철 계단을 몇 개 오르기만 해도 숨이 차오르는 저질 체력을 가진 나는 상상 속 헬스, 걷기, 달리기, 요가를 한다. 특히 요가를 참 좋아하는데,

요가가 주는 매력인 고요하고 순리대로 흘려보내는 정신. 이게 꽤나 마음에 들어 요가를 주제로 한 에세이가 보일 때마다 읽고 있다.
마법주문 같은 요가 자세들이 나올 때면 상상 속으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한쪽다리를 니은(ㄴ) 자로 만들어 올렸다가 고양이 자세를 했다가 뒷다리를 머리로 넘겨 몸을 둥글게 말았다가. 글로만 써도 숨이 차네.



실제로 요가를 배워본 적도 있다.

고3 수능이 끝나고 졸업까지는 꽤나 시간이 널널해서 뭐라도 배웠어야 했다. 그때 요가원을 3개월쯤 다녔는데 오렌지빛 조명과 나무창살문, 짙은 우드향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난생처음 이완과 명상을 배우고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굳은 몸뚱이를 이리저리 늘려보느라 애를 썼던 것 같다.

요가를 시작학 30분쯤 되면 꼭 잠이 그렇게 왔다.

아무리 또렷한 정신으로 수업을 따라가려고 해도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에 반수면 상태로 수업에 참여했다. 요가수업 마지막 10분쯤은 꼭 누워서 신체를 이완시키고 명상을 했는데, 이때가 꿀잠행이다.


강사님은 눈동자보다 흰자가 더 많이 보였을 나를 주시하고 있다가 명상시간만 되면 내 두 다리를 흔들었다.

‘자면 안 돼요. 잠드시면 안 됩니다.’

‘네. 안되죠. 안돼.. 안… 돼. 되나.. 돼..‘ 결국 잠든 나를 다시 흔들어 깨우기를 요가를 그만두는 날까지 반복됐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동료와 함께 요가를 다시 배운 적이 있다. 퇴근 후 7시부터 8시까지였던가.

곧잘 따라 하다, 또다시 스멀스멀 감기는 두 눈. 정신은 아득히 날아가고 가수면 상태에서 동작은 어찌어찌 잘 따라 하다 명상시간엔 깜빡하고 잠들었다.

나중엔 강사님도 깨우기를 포기하셨다.

어쩌면 흰자를 드러내며 꺾고 늘리고 접는 내가 무섭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에는 도통 요가는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여기저기 몸에 통증이 늘고 스트레칭만으로는 도저히 찌뿌둥함이 사라지지 않아 명상위주의 요가를 해볼까 싶다.


언젠가는 싱잉볼을 한번씩 두드리며, 실제 요가를 해보는 날이 오겠지. 나도 발리 어느 요가 야외수업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돗자리를 모래 위에 펼쳐놓고 룰루레몬 요가복을 입은 채 멋진 자세를 하고 있겠지.(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랄라레몬인지 룰루레몬인지가 요가복 중에서는 예쁘단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정말 어젠가는 꼭 해야 할 것 같다.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요가를 합니다.'로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하지 않아도 좋아만해도 된다는 걸.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꼭 러너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뭔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얼마만큼 좋아하는 걸 실제로 행하는지를 확인한다.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면 그 가수의 노래를 얼만큼 알고 듣고 있는지,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림에 대한 조예가 얼만큼 깊은지 혹은 잘 그리는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그쳐도 상관없다는 걸.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상상만으로 좋아해도 된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요가는 좋아하지만, 하지는 않는 나처럼.

그러다 어느 날, 진짜 해보는 날이 온다면 그때서야 기꺼이 즐겁게 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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