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혹은 일곱 살 무렵.
큰방 벽 한가운데에는 작은 비밀의 문이 있었다.
내 키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높이, 폭은 겨우 1미터 남짓.
아빠만의 비밀공간.
아무리 애를 써도 열 수 없는 비밀의 문.
아빠는 일부러 나를 놀리듯 열어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러다 일곱 살쯤 시립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아빠는 갑자기 그 문을 열어 보여주었다.
마치 도서관을 다니길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은 막내 삼촌이 나와 사촌언니를 억지로 도서관에 데리고 간 덕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구구단을 다 외웠지만, 정작 수학은 영 꽝이었다.)
문 너머에서는 약간의 먼지 냄새, 오래 묵은 종이 냄새, 혹은 곰팡이 냄새가 났다.
어두운 공간 안에는 책과 아빠의 일기장이 가득했다.
아빠의 일기장에는 육아일기마냥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중학교때쯤 일기를 읽고는 펑펑 울기도 했다. (언젠가는 아빠의 일기장을 공개해야지)
본가 아빠 방에는 지금도 책이 쌓여 있다. 책상 위, 바닥, 침대 옆 북스탠드까지, 늘 책이 놓여 있다.
고전문학부터 최근 소설, 동화책, 철학, 역사, 영어회화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시간이 많을 때는 하루 네 시간씩 책을 읽다가, 요즘은 두 시간으로 줄었다며 아쉬워하신다.
노안으로 오랜시간 독서를 힘들어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전화를 하신다.
“어느 작가, 어느 출판사 책 좀 보내줘.”
꼭 출판사까지 말씀하시는데, 번역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독서량은 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아닐까.
할아버지댁 사랑방 윗목에는 할아버지의 취침자리였는데 이부자리 옆 늘 책이 한 두 권씩 있었다.
한자로 가득한 책이라 감히 펼쳐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늘 불경을 필사하셨다.
워낙 깡촌마을이라 어린이들이 놀만한게 없던 시골에서는
명절이면 사촌들과 각자 책을 한두 권씩 가져와 명절 연휴동안 읽었다.
다 읽으면 서로 교환했고, 못 다 읽은 책은 다음 명절에 돌려주기도 했다.
우리는 어쩌다 명절날 모여 책을 읽게 된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분명한건 나와 사촌들도 책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엄마는 내게 정기적으로 책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 시절
동네 책방에서 책 한 권을 빌리는 데 300원, 많게는 700원 정도. 대여기간은 일주일.
엄마는 책 제목을 적은 메모를 쥐여주며 천 원을 함께 건네셨다.
책을 빌리고 남은 돈으로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권이상은 읽는다.
한 달에 책을 많게는 열댓권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몇페이지 읽다 방치된 책들도 더러 있다.
책은 나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이자, 새로운 의욕을 만들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피처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작은 책방을 열어
책 냄새에 둘러쌓여 살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책이야말로 가장 가성비가 좋은 도구 아닐까.
책은 가장 작은 비용으로, 가장 큰 세상을 열어주는 도구다.
지불한 금액에 비해 얻는 성장과 성찰, 그리고 정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책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생각을 적고, 기록하며…
책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거쳐 다시 흘러나올 때,
비로소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이 나를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나’로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