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이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과 그 아이에게 도와줄 수 없던 답답함에 울분 짓던 밤이었으리라 생각한다.
1심에서는 양모에게 무기징역, 양부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이 때도, 여론은 무기징역도 모자라다며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반기를 들었지만, 최종 선고인 2심에서는 양모가 징역 35년으로 감형받게 되었다. 법원이 감형을 선고한 이유는 종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발적 살인이 아니었으며, 119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택시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한 점, 범행과 폭행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후회하고 있으며 은폐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이 전 양모는 해외 아동 후원과 자원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 점, 만 35세 이하이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는바 등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우리는 법원의 판결에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더러 있을 터였다.
충남에서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던 군인 중사 출신인 80대 노인의 죄명은 강간이었다. 근처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성기와 가슴을 만지면 노트와 과자를 주겠다며 어린아이들을 끌어들였는데, 피해자만 40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판결은 징역 8년형.
미성년자인 친딸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한 아비에게는 징역 5년이라는 형이 확정되었다.
다른 판례로는, 자신의 딸이 강간당해, 분노가 치민 아버지는 법이 미처 내리지 못한 판결을 자신이 심판하고야 마는데, 가해자를 찾아가 살인을 했다. 이에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의문점 한가득인 판결문을 들으며 법원을 나서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법원 중앙홀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이 눈을 감고 법전을 들고 있다.
그러고 잘나신 검사님들은 이렇게 선서문을 읊곤 하더라.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그들의 ‘정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
정의
[명사]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라고 국어사전에 표현되어있는데, 당최 저들이 하는 말과 조합이 되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한자적 의미를 찾아보자. 정의(正義)는 ‘바를 정’ 자와, ‘옳을 의’를 써서 ‘옳고 바른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정의는 시시때때로 사회 규율과 특성에 따라 쉽게 변한다.
국가별로 낙태, 매춘, 포르노, 사촌 결혼, 대마초 등등이 금지되는 곳도 있고 허용되는 곳도 있다. 위 모든 것이 허용되는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인가? 덴마크인들은 모두 도리와 이치가 없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한 세기 전 까지도 갈 것도 없다. 우리는 고작 10년 전까지만 돌아가더라도, 법체계가 얼마나 허술하며 쉬이 변하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영화관 스크린 속에서 담배를 권장하며, 고속버스에서 까지 뻑뻑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지 않더냐.
절대적인 법체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식인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미개하다고 생각한다. 식인행위는 카니발리즘(cannibalis)이라고도 부르는데, 부정하고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멀지 않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나오는 피나 허벅지 살을 죽기 직전에 부모에게 먹이는 것을 효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그들에게 우리는 감히 정의가 없다고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러므로, 자신이 절대적인 정의의 기사인 것 마냥 판결문을 땅땅땅 치며 전지전능한 신 행세를 하는 그들을 보며 한 번씩 토악질이 나올 때가 있었다.
나는 정의라는 명패가 있다면, 그것을 그들에게 빼앗아, 산타클로스 같은 자비로운 위인들에게 수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분이야 말로 ‘정의’라는 단어와 대강 비슷할 것이니라. 또한, 조두순 집에 침입해 둔기로 폭행한 20대 남성에게도 나의 ‘정의의 훈장’을 내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