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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 Jan 26. 2022

6. 3시에 도착 예정이야.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예정



6. 3시에 도착 예정이야.  

   

약속이란 단어는 한 번씩 내게 큰 짐덩이 같을 때가 있었다. 째깍째깍 시계가 약속시간인 3시로 다가오는데, 1초 2초 늘어날수록 내 심장박동수도 덩달아 증가하곤 했다.

마치 3시 약속시간을 어기게 되면 지구 종말이라도 일어나게 되는 것인 마냥, 나는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런 절대적인 약속이 전재된 만남은 내게 유쾌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계산기처럼 딱딱 맞추어야 하고, 그것이 초과된다면 오답이라도 되는 마냥. 나는 ‘약속’이란 단어에 늘 긴장하곤 했다.

      

다이어트 약에 관한 논문자료를 읽어본 적이 있다. 책상에 앉아있는 일이 많은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큰 노력 없이도, 체중을 쉽게 감량할 수 있다니. 

굉장히 매력적인 약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당신들도 짐작했다시피 그다지 신체에 무해한 약물은 아니었다. 


다이어트 약 중에 자주 화두 되던 주 성분은, 암페타민 유사체로 만든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이었는데 이는 중추신경 흥분을 일으켜, 환각 작용을 야기한다고 한다. 다이어트 약들은 대게 이 약물들의 중추신경 작용을 최소화하며, 식욕억제 작용을 극대화시킨 약물인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한 마리의 연약한 사슴이 되었다. 멀지 않은 나의 시야에 숫사자가 점심메뉴로 나를 선택하였다. 나는 그 무시무시한 숫사자의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털이 곤두서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도망치기 위해서 피는 모두 근육으로 보내었고, 그로 인해 심장박동수가 빨라졌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입맛이 사라졌다. 생존본능이었다. 다이어트 약의 원리는 이와 같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입맛이 없어지는 것. 더 쉬운 예로, 엄마에게 혼나는 나를 상상해 보자. 

폴짝폴짝 뛰며 ‘룰루랄라 집에 가서 떡볶이나 먹어야지.’ 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엄마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김 00, 너 집에 오면 얘기 좀 하자.”     


나는 떡볶이고 나발이고 입맛이 없어지며, 엄마의 무시무시한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이와 같이 ‘약속’이 전재된 만남에서는, 늘 긴장함에 입맛이 없어지곤 하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아무리 값비싼 오마카세라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으며 상대방에게 로봇처럼 떫은 미소만 보여 주곤 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이런 빅데이터를 조합하여, 나만의 언어유희를 정하고 나서부터는 상대방을 만날 때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곤 했다. 누군가와 약속시간을 정할 때, 약속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3시에 도착 예정이야.”     


하고 말이다. ‘약속’과 ‘예정’은 비슷한 듯 보여도, 실상 완전히 달랐다. 예정이라는 단어는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무언가 조금 늦어도 될 것 같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정의하고부터는 상대방과의 점심식사에서 더 이상 체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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