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공 Jan 27. 2022

7. 사랑 같은 소리 하네.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사랑


7. 사랑 같은 소리 하네.    

  

노랫말에도, 드라마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네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가 없었다. 아마 미디어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수십 번이고 들었을 단어였다.

그만큼 ‘사랑’은 너무나도 흔하다. 그리고 쉽다.


허나,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 남발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곤 했다. 사랑의 정의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우주에서 가장 성스러운 단어인 그 사랑이란 단어가 대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사랑’을 정의하자면 이와 같다.     



첫째, 주머니 속에 넣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계절 봄이 오면, 함께 흩날리는 꽃향기에 또한 매료되곤 한다.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개나리 따위가 형형색색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냐. 저 작은 것도 제각기 생명이라고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고서, 나는 저 작은 꽃을 사랑하기로 했다. 나는 그 작은 생명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꺾어 주머니 속에 넣은 후, 다이어리 속에 끼워두었다.

생각날 때마다 그 모습을 추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꽃은 향기는 물론이거니와, 빛나던 제 색도 잃은 채 시들시들해져만 갔다. 드라이플라워는 개뿔. 내가 사랑한 그때의 그 모습은 온전히 없었다. 나는 꽃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핥아보고 싶었다. 조금 더 냄새를 맡고 싶었다. 곁에 두고 싶었다. 허나, 비틀어 말라지고 납작해진 다이어리 속 꽃을 보며, 내 사랑이 얼마나 추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둘째, 나비처럼 날려 보내주어야 한다.

나는 집시처럼 살고 싶었다. 평생에 내 꿈이기도 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방랑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나를 사랑한다고 칭하는 사람들은 나를 우리 안에 가둬두곤 했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면 몇 년 정도 해외로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내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거야. 날 두고 떠나려고?”     


하면서 날 옭아매곤 하였다. 그 말속, 그들이 사랑이라고 칭하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임을 알고 나는 실망하곤 하였다. 특별할 것 같았던 우리의 사랑은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한낱 먼지 같은 하찮은 것 일뿐.

반대로 부모님은, 친구들은. 나를 나비처럼 훨훨 날게 해 주었다. 걱정 서린 눈을 하긴 하였지만,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변할까 봐 하는 걱정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자유와 갈망을 절대 막지 않았으며, 나의 꿈을 무한히 펼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들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들의 위대한 사랑으로 인해 나는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연인 사이에 아직 ‘사랑’이란 단어가 오글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쉬이 할 수 없는 무거운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죽을 사(死) 자와 닮았다. 두 번째는 ‘너랑 나랑’ 할 때의 그 ‘랑’ 자와도 같다. 합하여 보면 ‘너와 내가 죽을 때까지-’라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정녕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게 맞긴 한가?

적어도 내게 사랑이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 애인에게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언제나 구속해~ ♡”, “오늘 하루도 집착해~ ♡”     


하고 말이다. 당신은 정말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이전 06화 6. 3시에 도착 예정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