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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Dec 29. 2018

'사랑'을 강요하는 국가

국기에 대한 맹세, 경례를 거부하며


2007년, 인권·평화 단체들이 '맹세야 경례야 안녕'이라는 활동을 펼친 적이 있었다. 바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이하 경례·맹세)를 비판하는 활동이었다. 2007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경례·맹세에 관한 사항을 국기법 시행령에 넣어 법제화·의무화하려는 것에 반대하며 시작된 활동이었다. 학교 등지에서 이 문제를 겪는 당사자인 청소년들도 이 활동의 중요한 주체로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애국가 제창이나 경례·맹세와 같은 일을 모두가 다같이 해야 한다고 제일 처음 접하고 몸에 익히는 곳이 학교이다. 아무리 많은 청소년들이 귀찮다고 대충 한다고 해도, 그러한 일이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경례·맹세는 일상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풍습'이자 제도이다. 한때는 오후 5시마다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거리에서나 경례·맹세를 해야 했고, 그 풍습은 사라졌더라도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이래 지금까지 경례·맹세는 학교나 각종 공공기관 행사 등에서 빠지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그나마 맹세문의 표현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던 것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 민주화 이후의 정권과 군사독재 정권의 차이였을 뿐이다..

(내가 어릴 적에만 해도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였는데, 2007년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변경되었다.)


여전히 강요되는 애국


어떤 이들은 ‘요즘 애들’이 경례·맹세를 진지하게 하는 시늉도 않는다고 혀를 차지만, 만일 누군가 경례·맹세를 대놓고 거부한다면 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과 마주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종교적·사상적 이유로 경례·맹세를 거부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경기도 중등 교사인 이용석이 자신은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한 사건은 2006년 사건이었고, 법원에서도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조선일보〉가 통합진보당을 공격하는 데 경례·맹세 문제를 꺼내들었듯이, 정당이나 사회단체 등이 공식 행사에서 경례·맹세 등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과 공격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국가기관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런 걸로 욕을 하는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또 그런 논리가 먹혀드는 것이 우리 사회다. 애국이 당연한 덕목처럼 생각되고 이에 이의를 가진 사람은 국민 자격이 없다고 잠정적으로 낙인찍힌다.


경례·맹세를 의무화하며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자신의 생각을 고백하도록 강요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이 따르고 경례하고 맹세하라고 하는 것이니 아주 완벽한 양심·사상의 자유 침해이다. 민주화 이후로 "몸과 마음을 바쳐"가 삭제되는 등 맹세문의 일부 표현이 수정되었다지만 "충성을 다 한다"는 표현은 그대로인데다가, 애초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롭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이중으로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맹세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 등지에서는 이런 강요가 인권침해임을 사법부가 확인한 예가 있고, 일본에서도 수많은 교사들이 국기·국가법에 저항하고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일본 정부가 애국심 강화를 내세워 군국주의 부활과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 사랑의 조건


애당초 사람들의 주권에 의해 구성되고 그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받고 통제돼야 할 민주주의 국가가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충성을 맹세하라고 하는 것부터가 좀 부적절한 일이다. 사랑이나 존경을 강제로 얻으려는 것은 폭력일 뿐이다. 국가가 개인에게 애국을 강요할 수 없다는 원칙이 세워지는 것이, 우리 사회와 교육이 국가주의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선결 과제이다.


나 역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알고 있는데, 대부분은 국민의례 시 기립은 하고 손만 올리지 않는다고들 한다. 나는 확고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아예 기립부터 거부한다. 정부 기관에서 하는 행사에서는 꼬박꼬박 국민의례를 하기에 모두들 일어나 있을 때 앉아 있기가 은근히 거북스럽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 그랬는데, 졸업식에서도 기립을 거부하자 교감이 다가와서 나무랐던 적도 있었고, 청소년인권 관련 토론회에서 시비를 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골이 나다 보니 그런 거북스러움을 좀 즐기는 마음도 생기고 있다. 나는 애국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애국심과 충성심을 공공연히 표현하라는 요구에도 응하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이 국민의례 때 일어나지도 않을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특히 무슨 국경일 행사도 아닌데 학교와 같은 공교육 기관에서 청소년들에게 경례·맹세를 당연한 듯이 시키고 강요하는 모습부터 금지되길 바란다. 나아가 애국가를 제창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당연하게 행사 때마다 하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어쩌면 언젠가는 나도 내가 속한 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의식에 별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애정을 표하는 국가나 공동체는, 적어도 사람들에게 존경이나 사랑, 경례나 맹세를 강요하지 않는 곳일 것이다.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강압적으로 나오는 그런 무례하고 폭력적인 녀석은, 전혀 내 타입이 아닌 걸 어쩌겠는가.





※ 2012년 5월 〈한겨레21〉에 쓴 글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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