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활동은 연결을 통해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게 된다. 회의, 기자회견, 시위, 서명, 거리홍보, 파업, 문화제, 토론회, 회원모임, 상영회……. 하루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실무를 처리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하는 운동이 그저 여러 행사들의 집합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조금 더 넓게는 하나하나의 캠페인이, 프로젝트가, 사업이 곧 활동가가 하는 활동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행사나 프로젝트, 사업은 모두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하나의 행사를 마무리하고 평가까지 마치고 나면, 혹은 연간 사업을 끝내고 결산과 보고서까지 만들고 나면 회의감이 찾아오곤 한다. ‘이게 정말 세상을 바꾸는 일인가?’ 변화는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데 행사나 사업은 짧으면 며칠, 길어야 1, 2년의 호흡이니, 아무래도 괴리가 느껴진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실무가, 행사가 정말 운동일까?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과 의문을 품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바람직하다. 이 고민을 뒤집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많은 언론사, 기업, 기관에서 사회 문제, 인권 문제 등에 관해 토론회를 열고 행사를 한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거나 기획 보도를 하거나 공익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는 것도 운동일까? 담겨 있는 목소리나 색깔이 다소 다를 때가 많지만, 그런 부분은 사회운동단체들 사이에서도 성향이나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럼 운동으로서 하는 행사와 기업 등에서 하는 행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행사를 운동으로, 운동의 일부로 만드는 것으로 목적의식과 전망을 꼽을 수 있다. 목적의식이란 이 활동이 어떠한 지향을 갖고 있다는, 그리고 어떠한 변화를 이루어내겠다는 명료한 인식을 가지는 것을 이른다. 목적의식은 전망으로 구체화된다. 전망이란 사전적 의미론 앞날을 헤아려 내다본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 행사를 통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 그 성과가 어떻게 운동의 발전에 기여할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는 운동의 목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질지를 헤아리고 상상하는 것이다. 행사, 사업의 호흡은 짧고, 운동, 변화의 호흡은 수년에서 수십 년으로 길기에 이 둘 사이의 괴리를 채우기 위한 것이 바로 전망이다.
활동가들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한편 지금 당장 하고 있는 행사가 어떻게 그 목적 달성에 기여할지 구상하고 계획함으로써 행사를 운동의 일부로 위치시킨다. 운동의 참여자, 지지자들 역시 단체/운동이 그러한 목적의식과 전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지금 당장의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미래의 사회 변화로 연결될 거라는 믿음 속에 행사에 참여한다.
기업 등에서의 행사는 비록 사회 문제를 다루더라도 대체로 이러한 목적의식과 전망 부분이 비어 있다. 일회성 행사나 실적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언론에서 특정한 사회 문제를 알리는 기획 기사를 보도한 경우를 떠올려보자. 기자나 편집부에게는 물론 어느 정도 그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주된 목적은 문제 해결 자체보다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좋은 기사를 쓰고 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기사를 쓰는 게 사회 변화에 보탬이 될 거라는 생각은 있더라도, 그 기사가 어떻게 변화로 이어질지에 대한 전망은 언론사 내부에는 없다. 그런 전망을 그리는 것은 사회운동의 몫이다.
또 다른 예로 활동가가 아닌 사람들이 운동에 연대하거나 운동에 가까운 활동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전에 청소년 지원 기관 관련자들이 청소년 참정권에 관한 모임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발언하는 등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학대 피해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청소년의 권리를 요구하는 데 목소리를 보탤 수도 있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일은 물론 의미가 없진 않고, 운동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운동이라고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활동이 한두 번의 참여나 몇 개월간의 사업 정도에 그치며, 이후에 그 이슈의 해결을 위한 주체의 자력화·조직화나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목표로 한 변화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꾸준히 운동을 할지 전망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경우는 청소년인권운동 쪽이 그 운동의 목적의식과 전망을 갖고 있었기에, 그러한 행사 등이 운동의 일부가 되도록 담보해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나는 행사, 사업을 운동으로 만드는 근본은 ‘연결’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어떤 자리가, 여기 모인 사람들이, 이 말과 글과 생각이 계속 연결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꿈과 믿음, 계획 같은 것들. 그것은 사람의 연결일 수도 있고, 말의 연결일 수도 있다. 시간의 연결일 수도 있고, 공간의 연결일 수도 있다. 사건과 역사의 연결일 수도 있고, 활동가의 경험과 기억의 연결일 수도 있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면, 사람들을 모으는 행사를 통해 운동단체는 그 사람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이후에는 그렇게 가입한 회원들을 의식화시키며, 회원들이 많아지면 더 영향력이 큰 활동을 기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연결을 통해 전파되고 축적되는 연쇄의 결과 운동은 변화를 이루어낸다. 물론 이러한 연결은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흐릿해지기도 한다. 사회운동이란 아무도 모르는 길을 목적지만 정한 채 더듬더듬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있는 줄 알았던 경로가 끊겨 있기도 하고, 도중에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대한 지향성과 목적지를 갖고 그곳을 향해 여정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계획이 운동을 운동답게 만들어주고 각각의 행사, 사업을 운동의 일부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잊어선 안 된다.
이러한 연결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지 않거나 상실되었을 때, 활동가들은 운동이 아닌 개별의 사업에만 매몰된 듯한 마음이 들고 혼란이나 허무감을 겪게 된다. 이는 활동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과업이라기보다는, 단체/운동 차원의 중요한 과제로, 단체/운동이 전망을 마련하고 연결에 대한 의식을 활동가, 참여자 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행사, 사업을 다른 것들과 연결시키는 연결 고리는 사람, 이야기, 자료, 문화, 제도, 조직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직접적이고 기초적인 매개는 바로 사람, 특히 활동가 자신이다. 활동가는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면서 운동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보유하고 이를 다른 활동가나 참여자들에게 전달한다. 활동가는 운동/단체의 목표를 주지한 상태에서 하나의 행사에서 나온 이야기나 성과가 다음의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기획한다. 가장 기초적 수준의 연결 고리는 활동가가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 자체이다. 하나의 행사는 어떤 식으로든 준비하고 참여한 활동가들의 경험이 되고, 그 활동가의 역량을 성장시키며 미래의 운동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좋은 운동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이 이상의 조직적·사회적 연결을 기획하고 만들어야 한다. 개별 활동가에게만 연결을 맡겨두지 말고 단체가 연결을 담보하고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행사와 사업을 거치면서 조직의 주장과 실천, 역사 등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연결해가는 것이 바로 운동이 더 확장되고 강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운동이 만드는 사회 변화 역시 더 나은 운동과 또 다른 변화로 연결된다. 하나의 성과, 변화가 이후에 더 근본적이거나 확대된 요구를 하는 운동의 기반이 된다거나, 운동이 더 커질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을 만드는 등의 사례는 많다.
이처럼 행사가 행사로, 사업이 사업으로 연결되고, 사업이 더 큰 운동으로 연결되면서, 변화가 변화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행사는 운동이 된다. 그러므로 활동가들은 언제나 ‘전망’을, ‘연결’을 염두에 두고 함께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