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다
누군가의 눈빛 하나에 상대가 고개를 떨군다.
그 어떤 언성도 오가지 않았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존재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하고, 사람들을 제압하는 장면.
어릴 적 그런 장면을 TV나 영화 속에서 볼 때면 온몸이 전율했다.
“저런 힘만 있다면,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할 텐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삶의 방향은 의지가 아니라, 힘으로 바꿀 수 있다고.
존재의 값어치는 그 사람이 가진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래서 나는 능력을 갈망했다.
말 없이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존중받는 권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조심스러워지는 분위기.
그런 게 진짜 '힘'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믿음의 바닥에는 고요한 절망이 있었다.
나는 내 삶이 너무도 하찮게 느껴졌고,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에 갇혀 있었다.
그러니 ‘초현실적인 힘’이라는 미끼는, 내게 현실에서의 패배감을 보상해주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현실에서의 무력감은, 초현실에 대한 집착으로 튀어오르곤 한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나의 하찮음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믿었다.
방과 후에는 무술 도장으로 달려가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복식호흡을 하며 단전의 기운을 느끼려 애썼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하압!” 기합을 넣고, 손바닥엔 굳은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만화책 속 주인공 같아서, 나 스스로에게도 자랑스러웠다.
거울 앞에 서서 눈빛을 단련했다.
말없이 상대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흔들림 없는 시선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눈을 가늘게 떴다 감았다 했다.
그 눈빛 하나면, 언젠가는 누구도 나를 쉽게 보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혼자서 기를 모으는 연습도 했다.
양손을 마주 대고 숨을 가다듬으면, 뭔가 미세한 기운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간절함이 만들어낸 감각이었을까.
어쩌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특별해지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언젠가 나도…
사람들 눈빛만 보고도 진실을 꿰뚫는 존재가 될 거야.”
나는 단련 중이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건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진짜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세상을 향한 준비가 아니라, 나 자신의 결핍을 포장하는 수련이었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를 따라갔던 한 작은 모임에서 처음 들었다.
“당신은 이미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심장이 요동쳤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내가, 마치 어딘가에 속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순간.
그곳의 지도자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눈빛이 다릅니다. 영적인 통로가 열려 있어요.”
나는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누군가 내 안의 ‘무엇’을 알아봐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더 자주 그 모임에 나갔고, 초감각 훈련이라는 이름의 체험을 반복했다.
두 눈을 감고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연습,
손끝으로 기운을 맞추는 명상,
미리 누군가의 상황을 떠올려보는 예지 훈련.
신기하게도 몇 번은 정말,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의 감정을 먼저 떠올릴 수 있었고,
상대가 손을 대기도 전에 내 팔에 찬기운이 흘러드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어떤 날은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현실처럼 겹쳐지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믿음 안으로, 아니 신비의 늪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이제 곧, 세상과 나 사이의 장막이 걷히고
모든 진실이 내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현실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고요했다.
내가 겪은 체험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내 처지는 그대로였고,
가족 안에서의 내 존재감도 여전했다.
“능력은 늘 나를 더 믿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외로운 세계로 몰아넣었다.”
그때의 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힘을 얻어서, 언젠가 누군가를 도울 거야.”
아무도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절반만 진실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필요받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위해 수련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단 한 사람도 도운 적 없었다.
오히려 사람은 뒷전이었다.
나는 능력 그 자체에만 집착했다.
사람을 살리는 법보다, 눈빛 하나로 상대를 꿰뚫는 법에 더 열중했고
관계를 맺는 법보다, 기운을 읽는 법에 더 집중했다.
그 모든 훈련의 목표는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나의 비참함, 나의 쓸모없음, 나의 외면받음—
그 모든 감정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
그게 ‘힘’이었다.
“나는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실패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던 거다.”
도를 수련한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사람보다 능력에 관심이 많았고,
깨달음보다는 인정이 필요했던 사람이다.
그토록 간절하게 찾았던 건 진리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는 증거.
힘은 내 방패였고, 도는 내 위장이었다.
“강해지고 싶다.”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결코 위대한 꿈이 아니었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다시는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강함은 이상이 아니라 방패였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약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자꾸만 더 큰 힘을 원했다.
힘이 쌓이면, 언젠가 이 세상을 압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도 나를 넘보지 못할 거라고,
내 아픔 따위는 아무도 몰라줄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던 도인의 길,
그건 나에게 고결한 수행이 아니었다.
그건 도피였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더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능력을 향한 갈망은 그 두려움이 만든 또 하나의 가면이었다.
“당신이 얻고 싶은 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을 숨기기 위한 방패는 아닌가?”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내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그토록 애써 찾았던 ‘힘’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 힘은 누군가를 구한 적도 없고, 나조차 안아준 적 없었다.
그저 외로움을 감추는 멋진 옷이었고,
상처 위에 덮은 반짝이는 가면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능력은 도가 아니다.
힘은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
도를 따르는 삶은 누군가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함께 걸어가는 태도다.”
나는 오랫동안 ‘무엇을 해야 하느냐’만 고민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느냐’—
그 물음 앞에 서게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진짜 길을 본다.
“그 시절 내가 믿었던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진짜 나와 멀어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특별해지고 싶지 않다.
대신,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다.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도망치지 않을 때,
그때부터 길은 시작된다.
오늘의 한 문장
“힘을 가지려는 사람은 두렵고,
방향을 찾으려는 사람은 깊어진다.”
오늘의 질문
“당신이 갖고 싶은 능력은
정말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을 숨기기 위한 방패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