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11

2장-3. 거짓의 재판 기록

by 공인멘토


새벽 02:13.
도시 동쪽 저층 상업 구역 아래, 외부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입구가 있다.
폐쇄된 전력 변환소처럼 위장된 3층짜리 회색 구조물.
그 지하 4층에 루세온의 모든 ‘불편한 기록’이 매립돼-보관돼-은폐돼 있다.

가온은 보안 카메라가 없는 지붕 배수덕트를 선택했다.
금속 뚜껑은 외부에서 잠금 확인 신호를 주기적으로 보내지만,
그가 손목 장치에 삽입한 임시 해킹 키(외부 허가증을 변조해 만든 128비트 토큰)는
신호를 0.2초간 중복 송출해 센서를 속였다—‘덮개 점검 중’으로 간주시키는 트릭.

뚜껑을 젖히자 미세한 먼지 냄새와 함께 찬 공기가 뿜어 나왔다.
가온은 어깨너비의 통풍 덕트 안으로 몸을 누였다.
금속판이 삐걱였지만, 소리는 35 dB 이하였기에 자동 알람 임계치에 미치지 못했다.
허리엔 드론-카메라 신호를 교란할 단파 재머가 묶여 있었고,
손목 화면에는 실시간 열 감지 맵이 떠 있었다.

―지하 1층 감시 레이저 구역

빨강, 주황, 파랑 선이 바닥에서 30초 간격으로 스캔을 교차.
그가 몸을 수평으로 낮추고, 한 호흡마다 40 cm씩 전진할 때마다
레이저는 불규칙 패턴으로 위치를 바꿨다.
센서는 ‘2.5 cm 이상의 높이 변화’에만 반응한다.
그 규칙을 역이용해, 가온은
※ 가슴, 엉덩이, 무릎의 세 지점을 15 cm 단차로 맞추는 등
몸을 기하학적으로 접어 통과했다.

진입 3분 14초 후—마지막 레이저가 벽면으로 회수됐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라이저 샤프트가 보였다.
고정 사다리 대신, 강철 케이블이 천장에서 늘어져 있다.
케이블은 하중 센서와 연결돼 있으므로
그는 케이블을 잡지 않고,
벨트에서 퀵-앵커를 꺼내 샤프트 벽면 홈(강철 리브)에 박고 로프를 걸었다.
미끄러지듯 8m를 하강하면서도 발끝이 벽면을 스칠 때마다
바닥이 아닌 벽 센서의 접지 전위를 활용해 ‘인공 발소리’를 분산했다.

지하 4층 기록보관 구역

문턱을 넘자 전기가 꺼진 듯 칠흑.
사방은 흡음 패널과 댐퍼로 둘러싸여,
걸음이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중앙에 높이 1 m 남짓한 홀로그램 큐브 테이블 하나.
상부 노즐에서 희황색 미립자가 분사돼-고정돼, 손짓 하나마다 빛이 응축-해체된다.
테이블 전면엔 ‘통합 기록 관리자—엘리시아 v21.4’라는 시스템 로고와
「민간 열람 불가」 빨간 경고가 박혀 있다.

가온은 속삭였다.
“엘리시아, 요청: 사건 코드 4-B-97 전면 열람.”

엘리시아 : 「요청 거부. 1등급 보안. 사유 입력 요망。」

“사유: 정의 실체 검증.”

0.7초 침묵. 그 짧은 버퍼 동안, 가온은
손목 장치에서 광커넥터를 뽑아 테이블 측면 마그네틱 포트에 꽂았다.
64-패킷 비인가 접속.
RAM 캐시 주소를 역추적해 관리자 인증 토큰을 강제 삽입.
경고음이 치솟기 직전, 시스템은 ‘외부 관리자 핫-패치’로 착각하고
권한 비트플래그를 잠시 열었다.

디스플레이가 변색했다—
회색 톤이 검은색으로 바뀌며 잠금 아이콘이 해제되는 모션.
이윽고 뜬 파일명:

[E-Δ-97] / 상태: Black-Archive (유배 기록)

1) 음성 로그

날짜: D-10Y-031 포맷: 아날로그 원본→디지털 변환

“정의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점수 위에 얹힌 건—죽은 윤리입니다.”

잡음이 섞이지만, 에단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뒤로는 군중의 숨 죽인 기척,
그리고 전기충격기 트리거 음.
녹음은 ‘꺽’ 하는 단말마와 함께 끝난다.

2) 재판 영상

흑백. 카메라 두 대 중 한 대가 격렬히 흔들린 뒤 꺼진다.
남은 하나로 젊은 에단이 심문대 위에 서 있는 장면이 찍힌다.
큰 화면 뒤에 **“정의 평점, 오차 범위 ±0.00”**라는 슬로건이 깔려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질서가 우리를 살린다면,”
“왜 우리 눈이 이렇게 죽어가죠?”

군중 몇 명이 고개를 들지만,
순식간에 집행관들이 시야를 차단한다.
영상이 강제 중단.
하단 로그: 「법령 §34-C에 따라 배포 금지, 서명: 집행관 이레」

3) 처분 결정서

죄목: 질서 저해 발언 / 감정 선동 / 평점 시스템 해킹 시도


판정: 격리 및 평점 완전 삭제(Death-of-Data)


서명: 이레・R.L.

서류 하단의 미세한 기록자 코멘트:

“피고는 끝까지 반성의 기색 없음.
공익보다 감정을 우선시함.
시스템 붕괴 위험 요소.”

감시 발각

파일을 읽는 순간,
홀로그램 테이블 상단에 붉은빛이 번쩍—

「비인가 관리자 트래픽 감지. 보안 팀 A-3 출동.」
남은 시간: 45초.

가온은 모든 로그를 손목 장치로 스트리밍 동기화.
44 %, 67 %, 93 %, 100 %.
동시에 캐시 메모리를 덮어쓰며 접속 흔적을 지웠다.
재머 전원을 최대로 올려 드론-영상 송출을 3초간 끊고,
출구 반대편의 폐쇄식 공조 덕트로 몸을 날렸다.

드론 헤드라이트가 복도를 스캔했을 때,
덕트 덮개는 이미 다시 결착돼 있었다.
금속판 안쪽, 가온은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찌릿한 먼지 냄새 속에서 드론이 떠나는 기류를 느꼈다.

탈출

03:06.
지상 덕트 뚜껑을 밀어 올릴 때,
동쪽 하늘은 첫새벽빛으로 엷게 물들기 시작했다.
손목 장치를 확인.
평점 6.05 → 5.65로 자동 하락.
경고 태그는 ‘관찰 대상 B’에서 ‘상급 주의 대상 A’로 승격됐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스트리밍 된 파일 속, 에단의 목소리가 아직 귓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점수 위에 얹힌 건—죽은 윤리입니다.

그리고 서명란의 이름.
이레.

가온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숨소리가 희미한 설렘처럼 폐 속에 퍼졌다.
이제, 질문의 칼끝이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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