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거짓말은 논리의 실패인가?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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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실 특유의 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물감이 마른 종이 냄새, 젖은 붓이 머금은 화학적 향, 그리고 학생들이 웃으며 떠드는 작은 소란.
이천재는 한쪽 구석 책상에 앉아, 자신이 그린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종이 위에는 붉은색과 초록색이 엉뚱하게 맞부딪혀 있었다.
색의 조화라는 개념을 학문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실제 손이 따라주지 않았다.
붓질은 삐뚤었고, 형태는 왜곡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아 ‘엉망’이었다.

그런데 이천재의 얼굴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이란 미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한 ‘결과물’이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다 계산이 틀렸다면, 그건 그냥 오류일 뿐인 것처럼.

그때, 옆에서 그림을 훑어보던 윤아가 다가왔다.
윤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 멋있다. 색이 되게 독특하다.”

그 순간, 이천재의 눈이 번쩍였다.
그의 뇌리에 ‘틀림’을 감지하는 신호가 울렸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곧장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색 조합은 색채 조화 이론에 어긋납니다.
따라서 ‘멋있다’는 평가는 허위 사실에 해당합니다.
왜 그런 발언을 하셨습니까?”

윤아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뭐…? 그냥 좋다고 한 건데…”

교실 주위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번졌다.
“야, 쟤 또 시작한다.”
“진짜 로봇 같다니까.”

윤아의 표정은 당황과 민망함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그녀의 말은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는 단순한 ‘칭찬’이었지만, 이천재는 그것을 ‘논리적 거짓말’로 판정했다.

그의 머릿속은 차갑게 정리되고 있었다.


사실: 그림은 조화롭지 않다.
관찰: 상대방은 ‘멋있다’고 발언했다.

결론: 발언과 사실 불일치 → 거짓.


“논리적으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이천재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사실과 불일치하는 말은 관계의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따라서 ‘멋있다’는 평가는 부적절합니다.”

윤아는 그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괜히 다른 쪽 친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냥… 좋다고 했을 뿐인데…” 하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몇몇은 킥킥 웃었지만, 윤아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고, 붓을 쥔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천재는 그 변화를 관찰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거짓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불편해하는가?’
논리와 감정의 온도 차이가, 처음으로 그의 세계를 흔들기 시작했다.

윤아의 작은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지자, 그 자리에 묘한 정적이 스쳤다.
옆자리의 친구들이 눈을 굴리며 서로를 힐끔거렸다.
누군가는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고, 누군가는 그냥 붓을 내려놓고 상황을 지켜봤다.

결국 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억눌린 짜증과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넌… 진짜 사람 마음 몰라.”

그 말에 교실 공기가 또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천재는 잠시 멈칫했다.
그는 수많은 방정식을 빠르게 푸는 것처럼, 이 말도 해석하려 했다.


“사람 마음” = 감정.
“모른다” = 인지 불가 상태.

결론: 그녀는 내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분석은 끝났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 그것이 문제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논리와 사실이 중요한 기준 아닌가요?”
이천재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사람이 서로의 신뢰를 유지하려면, 사실에 기초한 발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윤아의 얼굴은 더 굳어졌다.
눈썹이 찡그려지고, 목소리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그런 말이 더 상처야.”

이천재는 그 대답에 다시 한번 멈칫했다.
논리적으로는, ‘거짓’이 신뢰를 깨뜨린다.
그러나 그녀의 논리는 정반대였다.
‘정확한 사실이 오히려 상처를 준다.’

책상 위에 붓 소리만 사각사각 흘러나왔다.
주변 아이들 몇 명은 애써 다른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돌리려 했지만, 공기의 어색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천재는 눈앞에 놓인 자신의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조화롭지 못한 색들이 마치 지금의 상황 같았다.
그는 스스로 중얼거렸다.

“정확한 말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 문장은, 그의 세계에 처음으로 균열을 냈다.
옳은 말이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모순.
이 모순은, 그에게 감정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떠올리게 했다.

종이 울리고 미술 시간이 끝났다.
아이들은 완성된 그림을 정리하며 떠들썩하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천재는 의자에 앉은 채, 여전히 손에 묻은 물감 자국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윤아가 던진 말이 귀 안쪽에서 반복 재생됐다.

“그런 말이 더 상처야.”

이천재는 고개를 갸웃하며 노트의 빈칸을 채워 나갔다.
― ‘사과란 오류 정정의 절차.’
― ‘칭찬은 객관적 성취의 결과.’
― ‘거짓말은 진실과 불일치.’

그는 규정처럼 문장을 적었지만, 손끝이 점점 느려졌다.
오늘의 상황은 이 정의들에 들어맞지 않았다.

윤아는 사실이 아닌 칭찬을 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그 말의 의도는 긍정적이었다.

“그녀는 나를 기쁘게 하려 한 것인가?”
천재는 작은 소리로 스스로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왜 자신은 불쾌했고, 그녀는 상처를 받았을까?
논리와 결과가 어긋나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하나의 문장을 떠올렸다.

“말은 의미 전달인데, 왜 감정이 앞서는가?”

칠판 앞에서 교사가 했던 수많은 설명, 문제 풀이의 정답, 실험 보고서의 데이터는 언제나 정확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정확한 말이 충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함이 누군가를 찌르는 칼날이 되었다.

천재는 무심코 노트 한 귀퉁이에 커다란 물음표를 그렸다.
‘정확하지 않은 말이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는가?’

그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오늘 처음으로, 말이 정보가 아니라 온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차갑게 맞는 말과 따뜻하게 틀린 말.
둘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그의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남겼다.

하굣길, 늦은 오후의 운동장은 아직 아이들의 소란으로 덜 식어 있었다.
축구공이 튀어 오르고, 환호성이 터졌다가 곧 이내 바람에 흩어졌다.
천재는 가방 끈을 단단히 매고 혼자 운동장 옆 길을 걸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윤아의 얼굴과 “그런 말이 더 상처야”라는 문장이 맴돌았다.

그때, 운동장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체육복 차림의 남자아이.
무릎에 흙이 묻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곁에는 담임 선생님이 무릎을 굽혀 앉아 있었다.

천재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늦추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두 사람의 목소리는 바람에 섞여 전해졌다.

“괜찮아. 선생님은 네가 잘한 거 알아. 진짜 최고였어.”

아이의 어깨가 흠칫 멈췄다.
처음에는 흐느낌이 이어졌지만, 곧 천천히 고개가 들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아이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의 시선이 멈췄다.
그 말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분명 경기에서 지고, 실수로 팀에 피해를 줬다.
논리적으로 ‘최고’라는 말은 오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천재의 가슴에 전해지는 감각은 달랐다.

‘거짓인데… 왜 진짜 같지?’

그는 스스로 당혹스러웠다.
사실과 불일치하는 말인데도, 아이는 위로받았고, 표정은 분명히 달라졌다.
선생님의 말투, 눈빛, 손길이 그 말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었다.

천재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에 문장을 새겼다.

“사실은 틀렸는데… 감정은 맞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란 언제나 ‘옳음’과 ‘그름’으로 가려져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방금 본 광경은, ‘틀린 말이 진심처럼 작동하는’ 예외였다.
그 예외가, 도리어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힘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 끈이 유난히 무겁게 어깨를 눌렀다.
천재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릿속에 문장을 반복했다.

“사실은 틀렸는데… 감정은 맞았다.”

운동장에서 본 담임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말은, 분명히 논리적 기준으로는 오류였다.
그런데 아이는 울음을 멈췄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틀린 말이 위로가 되고, 잘못된 진술이 진심처럼 전해진다.

천재는 낯선 기분에 휩싸였다.
지금까지의 세계에서는 거짓은 언제나 배제의 대상이었다.
시험 문제에서 거짓은 오답이고, 과학 실험에서 거짓 데이터는 오류이며, 인간관계에서도 거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독이었다.
그는 늘 그것을 확신해 왔다.

그러나 오늘, 그 확신은 흔들리고 있었다.

천재는 주머니 속 손가락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가?”

논리적으로는 당연히 ‘그렇다’가 답이다.
하지만 오늘의 경험은 단호한 답을 허락하지 않았다.
담임의 말은 거짓이었지만, 분명히 아이를 살렸다.
윤아의 칭찬도 거짓이었지만, 아마 그 안에는 ‘나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천재는 자기 방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공책을 펼쳐 놓고, 펜을 굴리며 글자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사실과 진심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는가?”

그는 잠시 멈췄다.
종이 위에 새겨진 질문이 낯설게 보였다.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은 상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그 두 가지가 같은 궤도로 달릴 거라 믿었는데, 오늘 그것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천재는 다시 펜을 움직였다.
“거짓말도 누군가를 위한 언어일 수 있다.”

글자를 적는 순간, 이상하게 손끝이 떨렸다.
그는 펜을 잠시 내려놓고, 노트 가장자리에 ‘멋있다’라는 단어를 적어보았다.
윤아가 했던 그 한마디.
자신의 그림을 두고 했던 ‘거짓된’ 말.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어딘가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가 직접 쓴 ‘멋있다’라는 글자는 엉뚱하게도 따뜻하게 보였다.
그는 눈을 찡그리며 종이를 오래 바라봤다.

“정확하지 않은 말이, 누군가를 감싸는 포장일 수 있다면…”

그 생각은, 논리적 진리표에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정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밤이 깊었다.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이 노트 한 권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이천재는 펜을 잡은 채, 낮 동안의 일을 하나하나 복기했다.
윤아의 칭찬, 자신의 지적, 그녀의 상처받은 얼굴.
그리고 운동장에서 본 담임의 거짓 위로와, 아이의 눈빛 변화.

천재는 크게 숨을 내쉬며 보고서의 상단에 적었다.

감정 관찰 보고서 12호

“거짓말은 논리적으로 오류다.”
그는 첫 문장을 단호하게 썼다.
이 문장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거짓은 언제나 진실과 다르고, 논리의 체계에서는 ‘틀린 값’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손끝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다음 문장을 이어 적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진심일 수 있다.”

적는 순간, 펜 끝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마치 이 문장이 오늘 하루의 결론처럼 다가왔다.

그는 윤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멋있다.”
사실은 틀린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말에는 자신을 향한 작은 온기가 있었다.

그리고 담임의 말도 떠올랐다.
“너는 최고였어.”
그것은 거짓이었지만, 아이의 어깨를 펴게 만든 힘이었다.

천재는 공책에 더 적어 내려갔다.

“사실을 말했지만, 그 말이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
“나는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정의를 말했다.
그 결과, 관계는 멀어졌다.”

그의 눈은 문장 사이사이에 걸렸다.
정확한 말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틀린 말이 때로는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논리와 감정이 서로 다른 궤도를 달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마지막 문장을 적을 때, 그의 손이 잠시 떨렸다.

“거짓말은 감정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진심은, 꼭 사실이어야만 하는 걸까?”

천재는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었다.
방 안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마음속은 복잡하게 진동했다.
오늘 하루는, 거짓말이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 거짓말은 ‘감정을 품은 언어’ 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천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말은 정보가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는 포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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