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는 수업 중이라 비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에 네모난 그림자를 만들고, 구두 소리가 일정하게 메아리쳤다.
“소음: 34데시벨. 인적 밀도: 0.01명/㎡.”
나는 늘 그렇듯 상황을 수치로 정리하며 걷고 있었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보건실에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복도 끝 의자에 한 학생이 앉아 있었다.
여학생이었다. 교복 치맛자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었지만, 자세가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팔짱도 없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도 아니고, 흐느끼는 기척도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쉬는 학생’ 혹은 ‘보건실 대기자’로 분류하면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사실 그게 맞았다. 나와 상관없는 데이터는 내 기록에 불필요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스쳤다.
1초 남짓한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내 발걸음을 미묘하게 멈추게 만들었다.
나는 즉시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이상 반응. 시각 자극에 불필요하게 오래 집중 중.”
그 눈에는 특별한 표정이 없었다. 분노도, 환희도, 울음도 없었다.
그저 멍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공허한 시선.
하지만 그 공허가, 이상하게도 내 안쪽을 건드렸다.
나는 이 경험을 기록하려 애썼다.
“비언어적 자극에 과잉 반응. 이유 불명. 감정 반응일 가능성 낮음.”
논리적으로 분류했지만, 내 몸은 그 순간 확실히 ‘멈춤’을 선택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보건실 문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몇 걸음 떨어진 뒤에도, 등 뒤에 남아 있는 시선의 잔향이 묘하게 따라붙었다.
눈을 감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내 시야 한쪽에서 그 눈빛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보건실 문을 닫고 돌아나오는 길, 나는 일부러 그 아이 쪽을 보지 않았다.
그냥 한 명의 학생, 보건실 대기자, 통계적 존재일 뿐이라고 머릿속에 반복했다.
그러나 이미 몸은 어떤 데이터를 남겨놓고 있었다.
심장이 일정하지 않게 두 번 더 세게 뛴 것이 감지되었다.
“심박수 상승: 평균치 대비 +8회/분. 호흡 주기: 0.7초 지연.”
나는 즉시 원인을 찾아내려 했다. 달리지 않았다. 땀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목이 묘하게 답답했고, 가슴은 평소보다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울지 않았다.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도, 왜 거기 앉아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즉, 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것은 단순한 ‘시선 교차’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하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굳어지고, 손등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알던 신체 반응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자극 없음 → 반응 없음”이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극 없음 → 반응 있음”이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것은 감정인가? 아니면 단순한 신체 오류인가?”
논리적으로는 후자가 맞다. 그러나 내 안의 불편한 무게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교실 문을 열자 분필 긁는 소리가 먼저 귀를 찔렀다.
선생님이 칠판 가득 수학 공식을 적고 있었고, 아이들은 공책에 펜을 움직였다.
나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필기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펜촉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남은 건 아까 그 아이의 얼굴이었다.
눈물이 흐른 것도 아니고, 표정이 찡그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눈빛’이 내 시야의 배경처럼 겹쳐졌다.
칠판의 숫자가 흐릿해지고, 대신 그 공허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나는 펜을 들고 억지로 문제를 풀어보았다.
“3x + 2y = …”
그러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묘한 감각 때문에 숫자가 이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손이 저절로 노트 여백에 눈 모양을 그려 넣고 있었다.
둥근 원 두 개, 그 안의 작은 점. 아무런 계획 없이 나온 그림이었다.
옆자리의 민석이 팔꿈치로 나를 쿡 찔렀다.
“야, 너 오늘 왜 그래? 멍 때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민석의 말이 귀에 닿았지만, 의미로 변환되지 않았다.
나는 수업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집중’이라는 기능 자체가 꺼진 느낌이었다.
“집중력 저하: 발생 빈도 0.002%. 원인: 불명. 관련 변수: 보건실 앞, 낯선 학생, 눈빛.”
논리로 정리했지만, 정리한다고 해서 그 장면이 지워지진 않았다.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내 안에서 망막 위에 잔상처럼 떠 있었다.
쉬는 종이 울리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 마시러 간다는 명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지만, 발걸음은 이미 방향을 정해놓은 듯했다.
보건실 앞 복도. 그 아이가 앉아 있던 자리.
복도는 비어 있었다.
낡은 의자에는 햇빛이 얹혀 있었고, 창문 너머의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풍경인데,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관측 대상 없음. 이상 반응 제거 완료.”
머릿속으로 그렇게 선언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가슴께가 묘하게 눌린 듯 답답했고, 목 안쪽은 단단히 막힌 것 같았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두고 이런 반응이 이어지는 건, 내가 아는 모든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극이 사라졌는데, 왜 반응은 남아 있지?”
보통은 반대로 되어야 한다. 자극이 있을 때 반응이 생기고, 사라지면 곧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응이 먼저 남고, 자극은 이미 없다.
나는 복도 끝까지 걸어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시선을 끊기가 어려웠다.
마치, 그 눈빛이 여전히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것처럼.
“데이터 없음. 그러나 감각 잔존.”
그 문장이 노트에 적히듯 마음속에 새겨졌다.
이것이 감정의 전달이라면, 그것은 정보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무언가였다.
그러나 나는 그 단어를 끝내 확정하지 못한 채, 천천히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껴야 했다.
분필이 칠판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 아이들이 종이 위를 긁는 펜촉의 속삭임, 뒤에서 들려오는 잡담.
이것들은 내가 평소에 익숙하게 분석하던 환경의 수치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모든 소리가 배경으로 멀어지고, 단 하나의 영상만이 전면에 떠올랐다.
보건실 앞의 의자,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던 아이의 눈빛.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이미 내 안에서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 같았다.
펜을 잡고 노트 위에 글자를 적으려 했다.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칠판과 함께 내 앞에 놓여 있었지만,
펜촉은 숫자 대신 작은 곡선을 그려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둥근 원 두 개. 그 안에 찍힌 점.
나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 손은 분명히 ‘눈’을 그리고 있었다.
순간 펜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무의식적 패턴 발생. 원인: 미상. 입력값: 없음. 출력값: 있음.”
머릿속에서는 즉시 수학 공식으로 치환됐다.
함수 f(x)가 정의되지 않았는데 결과값 y가 존재하는, 논리적 불능 상태.
내가 아는 수학의 모든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종이를 찢어버린다고 해도, 머릿속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칠판에 적히는 흰색 분필선이 보일 때마다, 그 위로 다시 눈동자의 검은 윤곽이 겹쳐졌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지우려 했으나,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몸의 반응도 이상했다.
심장은 빠르지 않았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박자기가 고장 난 시계처럼 불규칙하게 두근거렸다.
목 안쪽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했고, 호흡은 평소보다 느리게 이어졌다.
나는 스스로를 진단하듯 읊조렸다.
“심박수 변동률 ±7%. 호흡 속도 저하. 체온 변화 없음. 원인 불명.”
논리적으로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사실은 하나 있었다.
— 나는 여전히 그 눈빛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
나는 노트 여백에 또 다른 문장을 적었다.
“감정은 증거 없이도 남는가?”
그 문장을 쓰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전해지는 전율이 나를 스스로 놀라게 했다.
보통이라면 질문은 내 의식이 던지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질문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먼저 이 질문을 강요하고 있었다.
논리가 아닌, 감각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지 몰랐다.
단지, 내 안에 설명 불가능한 잔여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공책을 펼쳤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도 앞 장면에 붙잡혀 있었다.
평소라면 실험처럼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손끝이 멈칫거렸다.
나는 보고서의 머리에 적었다.
감정 관찰 보고서 11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오늘, 나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고통을 감지했다.”
잠시 멈췄다가, 그 순간의 몸을 떠올렸다.
내게 일어난 변화는 분명했다.
눈을 돌리고 싶었는데 돌릴 수 없었다.
목 안쪽이 막힌 듯 답답했다.
가슴 안쪽이 묵직했고, 숨이 느려졌다.
손등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안에 없는 감정이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듯했다.
나는 적어 내려갔다.
“그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상처받은 사람처럼 느꼈다.
이 감각은 내 것이 아닌데, 내 안에서 남아 있었다.
정보의 입력이 없었는데, 감정의 출력이 발생했다.”
펜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논리적으로는 오류였다.
그러나 몸은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었다.
“감정은 언어 없이도 전달된다. 눈빛 하나에 고통이 실려 올 수 있다.
나는 오늘, 감정을 받았다. 그것은 정보가 아니라 감염이었다.”
보고서를 덮고 나서도,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묵직했다.
처음으로, ‘내가 겪지 않은 고통’을 기억 속에 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