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수업 시간, 교실 안은 햇살이 반쯤 스며들어 묘하게 나른한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칠판 앞에는 윤아가 서 있었다. 긴장한 듯 손에 쥔 발표 자료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억지로 힘을 준 떨림이 배어 있었다.
“따라서 이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의 독서량은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윤아는 교과서 뒤쪽에 실린 통계 자료를 가리키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자료 속 그래프의 꺾인 선을 보자, 이천재의 눈은 즉시 좁혀졌다. 그의 뇌는 곧장 수치를 정리했고, ‘모순’이라는 단어가 확연히 떠올랐다.
‘증가가 아니다. 전체 독서율은 감소세다. 저건 잘못된 인용이다.’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망설임 같은 감정은 애초에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손은 기계처럼 곧게 들려 올라갔고, 교사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또렷한 목소리로 지적을 시작했다.
“그 수치는 잘못 인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칠판 앞에 선 윤아가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이천재는 교과서를 펼쳐 든 채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자료의 범주는 ‘청소년 전체 독서율’입니다. 학생들의 ‘독서량’과는 다릅니다. 또한 최근 3년간 수치는 증가가 아닌 감소 추세를 보입니다. 따라서 결론에 논리적 비약이 있습니다.”
그의 어조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수학 문제의 답을 확인하듯 차갑고 명확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교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윤아의 손끝이 미묘하게 구겨지며 종이를 더 세게 쥐었다.
얼굴빛은 조금씩 굳어갔고, 입술은 떨렸지만 다음 문장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을 향한 채 멈췄다.
학생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던 잡담 소리도 뚝 끊겼다.
한쪽에서는 숨죽인 듯 기침이 섞였고, 몇몇은 서로 눈치를 주며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정적은 길었고, 공기는 싸늘했다.
그러나 이천재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논리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옳은 일을 했다고, 교실의 공기가 무거워진 건 단지 발표가 잠시 끊긴 탓이라고 생각했다.
윤아의 떨리는 손, 굳어버린 표정, 그리고 교실 전체를 감싼 어색한 공기.
이 모든 것은 그의 인식 범위 밖에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말은 논리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베어버리는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날, 그의 말은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날아간 첫 번째 칼날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종이 울렸다. 교실 안은 곧장 떠들썩해졌지만, 그 속에서 묘한 불균형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정리하며 수군거렸고, 시선은 은근히 이천재와 윤아 사이를 오갔다.
윤아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연필을 정리하는 척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평소라면 민석과 잡담을 나누거나 친구들과 웃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책상 위에는 적막이 흘렀다.
민석이 의자를 끌며 이천재 쪽으로 다가왔다. 특유의 장난 섞인 표정은 아니었고, 눈빛에는 묘한 진지함이 비쳤다.
“야, 너… 가끔은 말을 칼처럼 한다.”
순간, 이천재는 얼굴을 돌려 민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곧바로 반박했다.
“나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류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틀린 건 틀리다고 해야 합니다. 그게 정확한 수업 진행 방식 아닙니까?”
민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니, 틀린 건 맞지. 근데 말하는 방식이 문제였다고. 네 말이 정답일지 몰라도, 사람 마음에는 상처가 난다고.”
그때 옆에서 다른 친구가 작게 거들었다.
“윤아 얼굴 봤어? 정말 굳었던데.”
이천재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내가 틀린 정보를 바로잡은 건 사실입니다. 만약 수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감정과 상관없이, 사실은 사실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뭔가 안쪽에서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시선은 냉담했고, 윤아의 침묵은 그 논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민석은 잠시 이천재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섰다.
“그래, 네 말대로 해라. 근데 넌 아직 몰라. 말이 옳다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니라는 거.”
그 말은 장난처럼 던졌지만 묘하게 무겁게 남았다.
주변 아이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아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 놓인 윤아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녀의 눈은 교과서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천재는 그것을 잠시 스쳐 보았지만, ‘피곤해서 그런가’ 정도로만 해석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휘두른 건 정답의 칼날이 아니라, 감정에 남을 흉터였다는 사실을.
점심시간, 아이들이 우르르 급식실로 몰려갔다. 늘 그렇듯 수저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농담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윤아는 줄 끝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친구들 옆에서 소곤거리며 웃었을 텐데, 오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움직였다.
트레이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은 윤아는 숟가락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밥풀을 몇 알 떠 올리다 말고, 그냥 국물만 휘적였다. 눈길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 모습이 천재의 시야에서 자꾸만 커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왜 저렇게 있지? … 혹시, 내 말 때문인가?”
애써 부정해 보았다.
“아니야. 나는 단지 오류를 바로잡았을 뿐이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러나 머리로는 그렇다 해도, 가슴은 전혀 달랐다.
윤아의 굳은 표정, 혼자 남겨진 자리, 숟가락을 망설이는 손.
그 모든 장면이 자꾸만 천재의 마음을 찔렀다.
옆에서 누군가가 낮게 속삭였다.
“윤아 오늘 왜 저래?”
“아까 발표 지적당해서 그런 거 아냐?”
그 말들이 천재의 귓속에 꽂히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밥을 삼키려 했지만 목이 막혔고, 국 한 숟갈도 제대로 삼켜지지 않았다.
그는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렇게 우울해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나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무게는 단순한 논리적 불편함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이가 자신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지 모른다는 감각.
그건 그 어떤 공식이나 데이터보다 훨씬 무겁고, 날카롭게 그의 가슴에 박혔다.
“실수란, 답이 틀린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건가?”
복도 끝, 창문 옆에 서 있던 윤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에 비친 옆얼굴은 평소처럼 맑지 않았다. 입술은 다물려 있었고, 눈빛은 공허하게 멈춰 있었다.
천재는 걸음을 멈추었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가야 한다. … 그녀가 저렇게 있는 게, 내 탓일 수 있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네 발표에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했을 뿐…’
아니, 그건 또 변명일 뿐이었다.
‘미안합니다. 내 말이 당신을 다치게 했다면…’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마치 고백처럼 들리지 않을까?
그는 결국, 한 발을 내디뎠다.
“윤아.”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천재의 목이 바짝 말랐다.
“오늘… 발표 말이에요. 제 지적이… 만약 기분 나빴다면… 유감입니다.”
단어를 고르느라 목소리가 끊겼다. 그는 사과라는 감정을 언어로 포장하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윤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짧게 말했다.
“… 괜찮아.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는 다시 창밖을 향했다.
그 짧은 대답 속에 담긴 감정의 온도를, 천재는 읽어낼 수 없었다.
그저, ‘괜찮아’라는 말이 오늘따라 무겁게 들릴 뿐이었다.
천재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복도에 서 있었다.
가슴속에는 안도와 더 큰 불안이 동시에 솟구쳤다.
‘난 사과를 했지만, 전혀 닿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웃게 하기는커녕, 더 멀어지게 만든 건 아닐까?’
방 안은 조용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만이 작은 원을 그리며 교과서를 비추고 있었다.
이천재는 펜을 쥔 채 노트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나는 옳은 말을 했다. 수치는 잘못 인용되었고, 논리에는 분명 비약이 있었다.”
천재는 낮은 목소리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가슴을 찔렀다.
윤아의 굳어진 얼굴,
말없이 돌아선 어깨,
짧게 뱉은 “괜찮아”의 차가운 울림.
그 장면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펜 끝이 노트를 긁으며 흔들렸다.
“나는… 틀리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틀린 것 같지?”
천재는 고개를 감싸 쥐었다.
그제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실수란, 논리적 오류가 아니라 감정의 균열이었구나.’
윤아가 하루 종일 말이 없었던 이유, 웃음을 잃은 이유.
그건 단순히 ‘논리가 틀렸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말이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천재의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실수는, 답안지를 틀린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었다.”
그는 펜을 들어 노트에 적었다.
실수 = 감정의 상처.
논리적으로 맞아도, 마음을 잃으면 그것은 실패다.
손이 떨렸다.
이제야 깨달았다.
오늘의 발표 시간은 단순한 ‘지식의 검증’이 아니라, 누군가의 용기를 지탱해 주는 무대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그 무대를 무너뜨린 사람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
“사람들은 그래서 나를 냉정하다고 했던 건가?”
천재는 처음으로, 자신의 말투와 태도가 누군가에게 어떤 그림자로 남는지 깊이 생각했다.
심장이 무겁게 뛰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아프게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 하루가 실패로 기록되었다.
노트 한 장을 새로 펼쳤다.
머뭇거리던 펜 끝이 결국 글자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감정 관찰 보고서 21호
오늘 나는 실수를 했다.
내 말은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그러나 완벽한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실수란, 정답이 틀린 것이 아니라 감정이 어긋난 순간을 말한다.
천재는 잠시 멈추었다. 눈앞에 윤아의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괜찮다”라고 했지만, 그 말은 ‘괜찮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펜을 다시 들었다.
사과는 정답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내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내 마음에도 상처가 남는 일이었다.
마지막 문장을 길게 눌러 적었다.
실수란, 누군가의 마음을 놓친 기록이다.
펜 끝이 멈췄을 때, 가슴속이 아직도 무겁게 쿵쿵거렸다.
윤아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의 실수는 단순히 수업에서의 한 장면이 아니라, 앞으로 오래 남을 감정의 흔적이 되리라는 걸 천재는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