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국어 시간, 윤아는 칠판 앞에 서서 발표를 마무리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윤아, 이런 기본적인 부분도 확인하지 않고 발표에 나오는 게 말이 되니?”
선생님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교실을 울렸다.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윤아에게 쏠렸다. 아무도 직접적인 잘못을 윤아에게 돌리진 않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그 발표는 조별 과제였고, 윤아가 책임질 부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윤아는 순간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작게 떨리는 입술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말끝이 떨렸고,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웅성거리려다가 곧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정적은 이상하게 더 잔인했다. 마치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침묵, 그것이 윤아를 더 고립시켰다.
천재는 자리에 앉아 그 장면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윤아의 잘못이 아님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가?”
머릿속에서는 반박의 문장이 수없이 조립되고 있었지만, 목구멍은 끝내 굳어 있었다.
윤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상을 정리하더니, 결국 눈가가 붉어진 채 교실 문을 밀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교실 안의 공기는 더 차갑게 식었다.
천재는 손끝이 바짝 굳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게 지금, 나의 실수인가?
그 순간, 처음으로 그는 **‘감정이 침묵 속에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체감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교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는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며 어색한 공기를 깨뜨리려 했지만, 윤아가 나간 자리만큼은 여전히 비어 있는 듯한 공허가 감돌았다.
천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복도로 걸어 나갔다. 발걸음이 무겁고, 머릿속은 잔상으로 가득했다. 윤아의 고개 숙인 모습,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였던 붉어진 눈가.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가.”
그 생각이 발걸음을 따라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복도 창가 쪽에서 윤아가 서 있었다. 햇빛이 스며드는 유리창 앞에 서 있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바깥 운동장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가는 아직 붉게 물들어 있었고, 어깨는 작게 떨렸다.
천재는 멈춰 섰다. 다가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가슴이 조여왔다. 말해야 한다. 그러나 무슨 말을?
그때 윤아가 천재를 눈치챘는지 돌아보았다. 눈빛이 마주쳤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갔다.
“왜 그렇게 봐?” 윤아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다. “뭐 할 말 있어?”
천재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내뱉은 건 한 줄짜리, 비문 같은 문장이었다.
“… 그냥.”
그 단어 하나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천재도 알았다. 하지만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웅웅 울리는 건 수많은 문장이었으나, 목을 지나며 모두 증발해 버렸다.
윤아는 잠시 천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향했다.
천재는 가만히 서 있었다. 입은 닫혔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도 모르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 흔들림은 윤아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침묵했다. 그러나 내 감정은 여전히 여기 있었다.
그 사실을,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드러내고 있었다.
윤아의 눈가에 남은 눈물이 반짝였다. 그러나 이번엔 천재의 시선이 그 눈물보다 먼저 자기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울고 있습니까?’
그는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감각을 인식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반응이었다. 아픔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억울한 꾸지람도, 교실의 정적도 모두 윤아의 몫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눈에 물이 차오르는 걸까?
“너는… 항상 아무 말도 안 하지. 근데 네 눈이 좀… 그렇다.”
윤아의 말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재에게 낯설고, 동시에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그가 수없이 관찰하고 분석했던 감정의 대상이, 이제는 자신을 되비추고 있었다.
천재의 생각은 순간적으로 산산조각 났다.
‘감정은 관찰하는 데이터다. 나는 늘 기록하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록자가 아니라, 감정의 당사자다. 내가 대상이 되었다.’
그는 당혹스러웠다. 자기 자신을 연구 대상처럼만 여겨온 시간들이 무너지는 듯했다. 감정은 ‘타인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현상이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눈꺼풀 안쪽이 뜨겁게 젖어가고, 숨결이 흔들리고, 말은 목구멍에서 막혀버렸다.
“나는 왜 우는가?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물이 나를 흔들었다. 감정은 전염이 아니다. 감정은… 공명이다. 하나의 현상이 다른 현상을 울리듯이.”
이천재의 머릿속은 여전히 정의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정의는 더 이상 방어막이 되지 않았다. 논리와 개념은 눈물 앞에서 무력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따라 흔들렸고, 이성은 그제야 쫓아가려 했다.
윤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러다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너 진짜 우네? 나도 울다가… 웃겨버렸다.”
그 순간, 천재는 또 한 번 낯선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물이 상대의 눈물을 멈추게 했다는 사실.
‘내 감정이, 누군가의 감정을 바꿨다. 그럼 감정은 나만의 영역이 아니란 말인가?’
천재의 눈물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윤아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 닿음이 울음을 끊게 했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이제 더 이상 ‘관찰자’로만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윤아는 천재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물기를 보고는, 잠시 울음을 멈추더니 놀란 듯 속삭였다.
“너… 지금 울어?”
천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으로 눈을 훔칠까 하다가, 그것조차 부자연스러워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조차 인식이 늦게 따라왔다. 그는 멍하니 생각했다.
‘나는 울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오지? 감정은 내가 허락하지 않아도 흘러넘치는 것인가?’
윤아는 코끝을 붉히며, 하지만 조금은 웃음이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하다. 네가 우니까… 나도 울다가 웃겨버리잖아.”
그 말은 천재의 귓속을 세차게 울렸다. 그는 순간, 과거의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한 번은 윤아가 체육대회에서 크게 다친 뒤, 보건실에서 눈물을 흘리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논리적으로만 반응했었다.
“울지 마십시오. 수분이 손실됩니다.”
그 순간 윤아의 눈이 더 커지고, 눈물이 더 쏟아지던 기억. 그때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염장을 지른 듯한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이 쓰라렸다.
‘그때 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말을 내뱉었다. 위로가 아니라, 상처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내 눈물이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천재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언어는 정답을 전했지만 실패했고, 침묵과 눈물은 실패 같았지만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면 위로란, 옳은 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함께 흘려내는 것인가?’
윤아는 다시 작게 웃으며 눈물을 훔쳤다.
“네가 울어서, 나 눈물이 멈췄어. 이상하지?”
그 말에 천재의 가슴이 뜨겁게 조여왔다. 지금까지 그는 감정을 ‘분석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방금, 말 한마디 없이 흘러나온 눈물이 상대의 감정을 바꾸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안에서 조용히 선언했다.
‘감정은 설명으로 닿지 않는다. 감정은 감정으로 닿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천재의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반복 재생되듯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윤아의 얼굴, 울음, 그리고 마지막 웃음까지.
방에 들어와 책상 위 노트를 펼쳤지만, 펜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천천히 문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감정이 전해졌다. 언어보다 빠르고, 언어보다 깊게.’
책상 위에 손을 올리자 손끝이 떨렸다. 그 떨림은 낮에 윤아의 손끝에서 보았던 떨림과 겹쳤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모두 감정을 숨기려 하지만, 사실 감정은 언어보다 먼저 드러난다. 눈빛, 떨림, 눈물… 그것들이 말보다 앞선 언어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자문했다.
‘그렇다면 내가 울었던 건… 약함인가? 아니면 힘인가?’
잠시 침묵. 그리고 결론처럼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연결이다. 내 감정이 그녀의 감정을 바꾸었으니까.’
천재는 처음으로 감정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는 조심스레 단어를 적어 내려갔다.
“감정은 책임이다.”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 파급력. 자신이 웃으면 누군가도 웃고, 자신이 울면 누군가도 울거나 멈출 수 있다는 사실. 그 파급을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윤아는 계속 울었을까? 아니면 혼자 더 깊이 가라앉았을까? 내가 운 것이 그녀를 멈추게 했다면… 감정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는 힘이다.’
펜 끝이 노트에 꾹 눌렸다. 잉크 자국이 점처럼 번졌다.
천재는 그 번짐을 보며 또 다른 생각에 잠겼다.
‘감정은 물과 같다. 숨기려 해도 스며들고, 막으려 해도 새어 나온다. 결국 어딘가로 번져가 타인의 마음을 적신다. 그렇다면 나는 내 감정을 어떻게 흘려야 하는가? 누구를 적실 것인가?’
이 질문은 그에게 낯선 두려움이자 새로운 책임으로 다가왔다.
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펴고 펜을 든다. 오늘 하루는 도무지 기록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
감정 관찰 보고서 22호
나는 오늘 울었다.
그런데 그 눈물은 나의 것이 아니라, 윤아의 눈물에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억울하게 꾸지람을 듣고 고개를 떨굴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가가 젖는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힘에 휩쓸려 눈물이 고였다.
‘왜 하필 그녀였을까? 다른 친구가 울 때는 울지 않았는데. 아마도…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윤아가 내 눈물을 보며 웃었다.
“네가 우니까, 나 눈물 멈췄어.”
그 순간 깨달았다. 내 감정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울자, 그녀의 울음이 멎었다. 내 감정이 그녀에게 닿아, 그녀를 달래 버렸다.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의 감정에 나의 감정이 묶이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었고, 내 눈물이 그녀의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감정은 정보가 아니다. 감정은 파동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향할 때, 그 파동은 더욱 강력해진다.
“오늘 나는 배웠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물은, 나를 울리고, 그 울음은 다시 그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다.”
천재는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었다. 가슴이 아직도 묘하게 젖어 있었지만, 이번엔 불편이 아니라 따뜻한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의 눈물은, 그녀와 나 사이에 이어진 다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