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은 도시 소음처럼 분절된 웅성으로 부풀었다. 누군가는 우유를 뚝뚝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급식 트레이를 북처럼 두드렸다. 칠판 앞엔 종이 한 장이 붙었다.
〈학급 반장·부반장 추천 요청〉
종이 앞에 먼저 선 건 민석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어깨를 한 번 털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난… 음… 사양.”
민석이 양손을 가로저으며 뒷걸음질 치자 여기저기서 “에이—”, “한 번만 해라!”가 터졌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하면 재밌긴 할 텐데, 숙제 같은 건 진짜 못 챙겨. 우리 반 숙제 멸종 위기 온다.”
그때 누군가가 내 쪽을 가리켰다.
“그럼 천재가 해. 깔끔하잖아.”
“맞아, 시간표도 외우고 규칙 잘 지키고.”
“회의하면 정리본 뚝딱—”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종이의 문구를 천천히 읽었다. ‘회의 진행, 과제 공지, 생활 규정 관리, 담임 보조.’ 항목이 명확했다. 명확한 것은 좋다. 계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머릿속에 간단한 표를 그렸다.
조직 관리 효율성: 내가 맡을 경우 87% → 과제 미전달·중복 공지 감소 예상
규칙 집행 비용: 1일 평균 12분 → 허용 가능
의사소통 잡음: 문장 길이 조절로 23% 감소 가능(지난 사과 사건 이후 어휘 선택 보정 필요)
시간 절약: 매주 금요일 혼선 0화 가능
결론: 수락이 최적.
나는 손을 들었다.
“수락하겠습니다.”
나의 목소리는 고르게 떨어졌다. 내가 듣기에도 잘 정돈된 문장이었다. 논리적으로 흠이 없다.
순간적 정적. 그다음 어딘가 엷은 환호 같은, 그러나 끝을 보태지 않은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흘렀다.
“오… 그래, 고마워.”
“음… 좋지.”
박수는 나왔지만, 세 손바닥이 서로 엇갈리는 듯 산만하게 퍼졌다. 소리의 데시벨은 65를 넘지 않았다. 환영이라고 부르기엔 기압이 낮았다.
민석이 창가 쪽에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
“그렇게 맡고 싶었나 봐?”
말끝은 가볍게 올라갔는데, 웃음은 따라오지 않았다. 주변 몇 명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렇게까지?’라는 표정이 공기 중에 얇게 뜨는 걸 보았다.
나는 곧장 대답했다.
“원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분석 결과입니다. 제게 맡기는 편이 전체 효율이 높습니다.”
논리적으로,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장을 끝낸 순간, 교실의 온도가 한 칸 내려간 것 같았다. 누군가가 창문을 닫았는지 확인했지만, 창문은 그대로였다. 내 안쪽에서만 바람이 멈췄다. 한쪽 구석에서 종이컵이 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실제 데시벨은 낮았으나, 체감 볼륨은 불필요하게 증폭되었다.
나는 칠판 앞 명단에 내 이름을 정자로 또박또박 썼다.
〈반장: 이천재〉
글자를 적는 동안, 등줄기를 따라 아주 가느다란 전류가 흘렀다. 긴장 반응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그 전류의 원인은 ‘업무 부담’이 아니라 공기였다. ‘고마워’와 ‘좋지’ 사이의 미세한 공백, 박수와 웃음 사이의 빈칸, 그리고 민석의 문장 끝에 붙지 못한 웃음.
나는 고개를 들고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모두 제자리였다. 숫자로는 ‘함께 있음’. 하지만 체감은 ‘조금 비켜섬’.
나는 속으로 짧게 정리했다.
“선택은 완료. 변수 없음.”
그런데, 선택이 끝나자 변수가 생겼다. 가슴 한가운데 아주 얇은 모래알 같은 이물감. 논리표 어디에도 기재되지 않은 항목. 이름: 불쾌감? 혹은 어색함? 혹은—감정.
나는 칠판에서 내려와 자리로 돌아왔다. 지나가며 민석과 시선이 스쳤다. 그는 눈썹을 아주 조금 올렸다가 내렸다. 그 작은 움직임이 말보다 큰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업무 분장 후에 회의 체계를 조정하겠습니다.”
그는 짧게 “응.” 하고, 그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자리 앞에 앉자, 노트의 빈 페이지가 반짝였다. 나는 펜을 들어 한 줄을 적었다.
“합리: 수락. 공기: 미묘. 결론: 모순 감지.”
그리고 한 칸 띄어, 아주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선택 = 값. 감정 = 단위?”
문장을 닫는 순간, 창밖 운동장의 햇빛이 교실 바닥에 사각형으로 떨어졌다. 그 사각형 밖이 조금 더 따뜻해 보였다. 나는 사각형 안에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완전히 옳았다. 그런데—조금, 춥다.
점심시간의 소란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내 귀에는 아직도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래, 고마워.”
“좋지.”
박수와 함께 흘러나온 그 말들은 표면적으로는 환영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알아챘다. 목소리의 톤은 환영이 아니라 정리였다. 마치 이미 정해진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듯한 얇은 억양.
특히 민석. 그는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표정.
“그렇게 맡고 싶었나 봐?”
그 한 마디가 공기를 바꾸었다. 장난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말의 끝에 눌린 힘이 있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원함이 아닙니다. 분석 결과입니다.”
내 말은 명확했다. 하지만 대답을 끝내자마자, 주위 몇몇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옳은 말’을 했는데, 분위기는 ‘옳지 않음’으로 반응했다.
책상 위에 놓인 우유갑을 손으로 굴리던 아이가 손을 멈췄고, 다른 아이는 빨대를 입에 무는 속도를 늦췄다. 사소한 행동의 공백들이 교실을 채웠다. 웃음은 끊겼고, 웅성은 줄었다. 교실의 소음 그래프가 갑자기 평평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선택: 최적.
효율: 보장됨.
반응: 불분명.
수학식은 완벽했는데, 답안지를 채점하는 눈빛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낯선 질문이 내 안에 솟아올랐다.
“왜 내 논리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는가?”
민석은 내 대답 이후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그 단순한 회피가 내 가슴 안쪽에 잔상처럼 남았다.
나는 펜을 들어 노트 모서리에 작은 글씨를 썼다.
“분위기 = 수치화 불가. 논리와 감정의 괴리 발생.”
그리고 펜 끝이 잠시 멈췄다. 그 멈춤 속에서, 불편감이라는 감정이 처음으로 이름을 달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다시 한번 내 결정을 점검했다. 반장의 역할은 단순했다. 시간 관리, 규칙 집행, 과제 전달.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효율은 올라간다. 교사는 덜 힘들 것이고, 학급은 덜 혼란스러울 것이다.
모든 분석 결과가 YES였다.
그런데, 내 가슴은 NO라고 하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흥분이 아니라 무게였다. 머리는 가벼워야 할 정답을 증명했는데,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기분이 나쁘지?”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종이 위에 ‘반장 = 최적의 선택’이라고 적어놓고, 그 밑에 선을 긋고 또 적었다.
‘하지만 기분 = 불쾌.’
마치 수학 문제에 정답을 써넣었는데, 시험지를 본 순간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X표를 치는 기분이었다.
민석의 말이 자꾸 귓가에 울렸다.
“그렇게 맡고 싶었나 봐?”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맡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필요하니까, 논리적으로 맞으니까 수락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 한 마디는 내 가슴에 박혀 계속 울렸다.
나는 스스로를 심문하듯 물었다.
“원함과 필요가 다를 때,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나는 필요를 따랐는데, 왜 주변은 나를 원함으로 본 걸까?”
그 순간, 머릿속의 그래프가 뒤틀렸다.
논리와 감정의 좌표가 어긋나 있었다. X축과 Y축이 맞지 않는 그래프처럼, 나는 곧게 선을 그었지만 도표는 기울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자각했다.
‘논리적으로 옳은 선택이, 반드시 인간적으로 옳은 선택은 아니다.’
그 깨달음이 내 심장을 세게 움켜쥐었다.
나는 종이에 작게 적었다.
“정답 = 불편할 수 있다.”
그 글자를 바라보다가, 내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나는 괜히 책상 위 연필을 굴리며 머릿속을 더듬었다.
민석이 한 말, “그렇게 맡고 싶었나 봐?”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서운함이 스쳐 지나간 흔적 같았다.
순간, 예전 일이 떠올랐다.
학기 초, 내가 교사에게 잘못 지적을 받았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였다. 그런데 그때 민석이 나서서 말했다.
“선생님, 그건 제가 한 겁니다. 천재는 잘못 안 했어요.”
민석은 벌점을 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나를 감쌌다. 그날 나는 아무런 반응도 못 했다.
“고맙다”는 말조차 못 했다. 그냥 수학 공식 외우듯 상황을 기록해두기만 했다.
그 기억이 지금의 상황과 겹쳐졌다.
민석은 나를 위해 감정적인 선택을 했었다.
그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친구를 지켜주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학급 전체를 ‘효율’이라는 말로 정리해 버렸다.
민석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 그의 감정은 내 계산식 속 변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감정으로 움직였고, 나는 논리로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정으로 움직였던 그때의 민석은 내 기억 속에서 따뜻하다. 논리로 움직인 나는 왜 지금 차갑게 느껴지는가?”
그 생각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민석은 그날 나를 감싸주면서도 씩 웃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아무도 웃지 않는 선택을 했다.
효율적이고 정확했지만, 어딘가에서 틈이 벌어지는 듯한 감각.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속으로 결론을 적어 넣었다.
“논리는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오늘 교실에서의 공기를 여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반장이라는 자리는 효율적 관리 능력이 필요했고, 규칙을 집행하고 과제를 분배하는 일이라면, 나만큼 정확하게 처리할 사람은 없었다.
나는 장단점을 따져봤고, 수락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시 “수락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도, 그저 논리적 귀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공기가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보여준 반응은 감사가 아니었다.
고맙다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힘이 빠져 있었다.
마치 ‘그래, 어쩔 수 없지’라는 수용에 가까웠다.
그 속에는 내가 기대했던 신뢰의 무게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민석은 언제나 아이들 사이에서 ‘불합리한 일’을 먼저 막아주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놀림당하면 곧장 나서고, 뒷정리가 필요하면 말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누가 잘못을 저질러도 “쟤 원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오늘 힘든가 봐”라며 대신 말을 던져주던 것도 민석이었다.
그는 효율적인 리더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그를 신뢰했다.
아이들이 ‘민석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늘 사람의 마음을 먼저 챙겼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는, 오늘 내 선택을 효율로만 정당화했다.
나는 분명 옳았다. 그러나 옳음은 차갑게 들렸다.
나의 옳음에는, 그들을 안심시키는 온도가 없었다.
효율은 있었지만, 신뢰는 없었다.
그때 민석이 내뱉은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맡고 싶었나 봐?”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네가 효율만 따졌지, 우리 마음은 안 봤잖아’라는 묵직한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뜻을 알아차리는 순간, 가슴이 저릿하게 무거워졌다.
나는 노트를 펴고 적기 시작했다.
효율은 빠르다. 하지만 감정 없는 효율은 공허하다.
신뢰는 느리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신뢰를 따른다.
민석은 신뢰를 가진 리더였고, 나는 효율만 가진 후보였다.
펜 끝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오늘의 어색한 공기가 다시 느껴졌다.
내가 내린 결정은 정답이었지만, 불편한 정답이었다.
논리만으로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민석은 리더였지만, 나는 아직 아니다.”
그 문장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정하는 순간, 숨이 깊게 내려앉았다.
오늘의 불편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내 선택 속에 감정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감정 관찰 보고서 24호
오늘 나는 반장 자리를 맡겠다고 했다.
분명 논리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다.
효율성, 규칙 집행 능력, 시간 절약 ― 모든 항목에서 나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논리로 계산했고, 계산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교실의 공기는 달랐다.
아이들은 고맙다고 했지만, 웃음은 억지였고, 공기에는 어색한 틈이 생겼다.
민석은 “그렇게 맡고 싶었나 봐?”라고 했다.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나는 느꼈다.
내가 효율만 보고 결정했을 때, 누군가는 그 순간 신뢰를 잃었다는 것.
나는 적는다.
선택은 결코 논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감정을 외면한 선택은 불완전하다.
효율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신뢰가 사람을 움직인다.
민석은 신뢰의 리더였고, 나는 효율의 관리자였다.
오늘의 선택은 옳았지만, 불편했다.
그 불편감이 말해준다.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은, 결국 인간적인 선택이 아니다.
마지막 문장:
“선택은 감정을 동반할 때에만, 인간다운 판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