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진심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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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그러나 닿지 않은 말


쉬는 시간, 교실 안은 친구들의 잡담 소리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급식 메뉴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게임 얘기로 소리 높여 웃었다. 그 소란 속에서 이천재는 책상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눈은 분명 수학 교과서를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그 위를 흘러내려 멈추지 못했다. 머릿속은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사과해야 한다. 지난번 내 말이 친구 A를 다치게 했다. 책임은 감정의 흔적이라 했으니, 그 흔적을 지워야 한다.”

그는 정확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계산기를 두드리듯 마음속으로 문장을 정리했다.


사과의 목적: 상처 회복.
전달 방식: 간결하고 오류 없는 언어.

예상 결과: 오해 해소 및 관계 회복.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이천재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에서 혼자 책을 정리하던 A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은 무겁고 서툴렀다. 주변의 소음이 갑자기 희미해지는 듯했고, 그의 심장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발표 때… 지적했던 건… 유감입니다.”
말은 정제된 수학 공식처럼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당신이 불쾌했다면, 그것은 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설명. 그러나 그 순간, 천재는 상대의 얼굴에서 기대했던 변화―안도나 미소―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A는 잠시 천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차갑게 굳은 경계가 담겨 있었다.

“됐어.”
그 짧은 대답과 함께 A는 가방을 둘러메고 자리를 떠났다. 발걸음은 빨랐고,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었다.

천재는 자리에 홀로 남겨졌다. 그의 머릿속은 곧장 분석을 시작했다.


발화: ‘유감’ 전달 성공.
설명: 의도 부재 명확히 고지.

결과: 관계 개선 실패.

“왜지? 나는 옳은 말을 했다. 정확하게 사과했다. 그런데 왜 그는 등을 돌렸는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전보다 더 멀고,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천재의 입술은 굳어 있었고, 그의 시선은 A가 떠난 빈자리만 붙잡고 있었다.

무언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문장의 오류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속 어딘가, 천재조차 계산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2절 말은 했는데 왜 더 멀어졌는가?


A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이천재의 가슴은 묘하게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만, 책상 위 교과서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내뱉은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나는 분명히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내 의도가 불쾌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사과의 조건은 충족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받아들이지 않은 거지?”

천재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조건 1: 발언의 정확성 → 충족.
조건 2: 의도 설명 → 충족.

조건 3: 관계 회복 기대치 → 미달.

논리의 표는 깔끔했지만, 결과는 모순으로 남았다. ‘옳은 사과를 했는데 관계는 더 멀어졌다.’

천재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심은 말의 정확성으로 전달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진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의 시선이 교실 바닥의 타일에 고정되었다. 마치 답을 구하듯 하나하나의 줄무늬를 따라가다, 문득 심장이 불편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상했다. 그는 언제나 문제를 풀 때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가 옳다고 해도, 가슴이 이상하게 답을 부정하는 듯했다.

“혹시 감정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건가?
말은 그저 늦게 따라오는 도구일 뿐인가?”

천재는 손바닥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떨림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 어딘가에선 확실히 흔들림이 있었다. 방금 전, A의 차가운 시선과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 표정은 단순한 수학적 ‘결과’가 아니라, 그 순간 A의 마음에 남은 감정의 흔적이었다.

“나는 옳았지만, 그는 아팠다. 그 사이에 무엇이 빠져 있었나?”

교실의 소음은 여전히 같았지만, 천재의 귀에는 점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웃음과 잡담 사이,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3절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순간


점심시간, 급식실.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한쪽 구석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천재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에 멈췄다. 친구 B가 트레이를 엎지른 뒤, 얼굴이 빨개져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음식물이 바닥에 흩어지고, 몇몇 아이들이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천재는 순간, 뇌 속에서 몇 가지 적절한 대응 문장을 조합했다.


“당신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합니다.”
“위생 규칙상, 교체된 음식을 요청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정확하고 깔끔한 문장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민석이 먼저 나섰다.
민석은 별다른 말도 없이 흘러내린 국그릇을 주워 올리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새로운 쟁반을 받아왔다. 그리고 친구 B 옆에 조용히 앉더니, 단 한 마디만 꺼냈다.

“야, 괜찮아.”

그 말은 짧았다. 오히려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단순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B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얼굴을 살짝 들더니, 민석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멈췄다. 그리고 곧 작은 웃음 비슷한 게 입가에 번졌다.

천재는 숨을 삼켰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정답도, 분석도, 설명도 없었다. 그런데 상대는 위로받았다.”

민석은 여전히 옆에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고, 눈을 마주쳐주고, 옆에 음식을 놓아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행동들이, B의 감정에 변화를 만들어냈다.

천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말을 한 게 아니다. 존재를 건넸다. 말보다 먼저 도착한 건 그의 감정이었다.
그게… 진심인가?”

천재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며, 자신의 이전 사과를 떠올렸다. 정답을 말했지만 상대가 더 멀어졌던 순간.
지금 민석은 정답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가까워졌다.

논리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천재는 점점 확신하기 시작했다. 진심이란, 기술이나 정답이 아니라, 마음이 두려움을 뚫고 건네진 순간이라는 사실을.



4절 말이 아닌 존재


천재는 여전히 급식실 구석의 장면을 곱씹고 있었다.
민석은 특별한 수식어도, 장황한 위로도 쓰지 않았다.
그저 “괜찮아”라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옆에 앉아 있었을 뿐.
그런데 그 말은, 이상하게도 B의 눈물을 멈추게 했다.

천재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방금까지 정확한 문장을 떠올렸다. 그 문장은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순간, 상대는 더 위축되었을 것이다.
민석의 말은 부정확했지만, 그들의 감정을 바꾸어냈다.
말이 아니라, 무엇이 전해진 거지?”

그는 노트북 대신 머릿속에 ‘감정의 전달 조건’이라는 항목을 만들었다.


언어적 정확성 = 실패
논리적 설명 = 실패

감정의 방향성 = 성공?
존재 그 자체 = 성공


민석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로 마음을 건넸다.
말이 아니라, 그의 눈빛과 태도, “네 옆에 내가 있다”라는 침묵이 위로가 되었다.

천재의 가슴속에서 묘한 두려움이 올라왔다.
“나는 존재로 건네는 법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말로만 설명했다.
그래서 나의 말은 옳았지만, 마음은 닿지 않았다.
그게 내가 두려운 것이다. 내 진심이,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것.”

그는 책상 위에 남겨진 자신의 흔적들을 떠올렸다.
정답만 가득한 노트, 논리만 가득한 발표, 그리고 어색하게 끝난 사과.
그 모든 것이 기술적이었지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 진심을 준다.
그게 민석과 나의 차이다.”

천재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민석의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야, 괜찮아.”
이 짧은 문장이, B의 눈물보다 먼저 마음속에 도착했던 것이다.

천재는 그 사실을 직감했다.
진심은 기술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진심은 존재의 무게와 감정의 방향으로 전해졌다.



5절 진심은 감정의 방향성


천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낮의 장면들을 곱씹었다. 사과하려는 자신의 말은 정확했지만 어색했고,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석의 말 몇 마디와 조용한 동행은 울던 아이의 눈물을 멈추게 했다. 말은 오히려 민석보다 자신이 더 잘했을 텐데, 왜 결과는 정반대였을까?

“내가 말한 건 정확했지만,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옳았지만, 진심은 아니었던 걸까?” 천재는 속으로 질문을 반복했다.

책상 위에 노트를 펴고 ‘진심’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글씨가 자꾸만 삐뚤어졌다. 평소라면 깔끔하게 맞춰 써 내려갔을 글씨가 이상하게 흔들렸다. 천재는 그 흔들림이 마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눈을 피했다.

“진심은 기술이 아니야. 정확한 문장을 고르고, 옳은 표현을 택하는 게 아니야. 민석은 단순히 옆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전해졌다. 그건 기술이 아니라… 용기였다. 상대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드는 힘.”

그제야 천재는 깨달았다. 자신이 실패한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용기 부족이었다는 것을.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 상대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혹은 불편한 침묵조차 함께 견디려는 용기. 그 모든 게 ‘진심’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었다.

“진심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천재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말은 그 뒤를 따라가는 거다. 내가 먼저 내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말도 살아난다.”

천재의 눈에, 민석이 보여준 단순하지만 따뜻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말보다 존재, 기술보다 용기, 정답보다 마음. 그는 그제야 진심이란 감정의 방향성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6절 감정 관찰 보고서 26호


제목: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정

오늘 나는 사과를 했다.
내 말은 정확했고, 표현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 순간, 나는 실패했다고 느꼈다.

나는 옳았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민석은 다르게 했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옆에 앉아 있었고, 잠시 등을 토닥였을 뿐이다.
그런데 울던 아이는 웃었다.
그건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닿은 순간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진심은 기술이 아니다.
진심은 용기다.
상대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
두려워도 그 자리에 머무르는 용기.
그 용기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 바로 진심이다.

말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결론:
진심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정,
상대의 마음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그것이 오늘 내가 배운 감정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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