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고치고 있다 24화

이제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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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생각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둡고, 더 무기력했던 시절로 돌아가면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던 시절,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
그때의 나는 무너져 있었지만, 동시에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엔 하루를 어떻게 버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고, 실망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관계를 줄이고, 감정을 닫고, 삶을 최소한의 기능만 남긴 채 유지하면 됐습니다.
살아 있기는 했지만, 살아내고 있다는 감각은 애초에 포기한 상태였지요.


회복이 시작된 지금, 오히려 삶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느끼지 않아도 됐던 감정을 다시 느껴야 했고,
말하지 않아도 됐던 마음을 설명해야 했고,
다시 무언가를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유혹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편하지 않을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잖아.”


그 생각은 아주 조용하게 찾아옵니다.
크게 무너뜨리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지친 밤, 모든 게 버거운 날에
마치 과거의 내가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그땐 이만큼 힘들진 않았잖아.”


하지만 곧 깨닫게 됩니다.
그 시절이 편했던 게 아니라, 아무것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버려두었던 것이었다는 걸요.
그건 안락함이 아니라, 감각을 끊어낸 상태였고
회복이 아니라, 정지였습니다.


나는 그 시절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방식은 분명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고,
그 나름의 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방식은 계속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버티기 위해 임시로 선택한 형태였다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의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조용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의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이 결심은 단호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분명합니다.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습니다.



2절 회복은 새로운 책임감을 요구한다


회복은 생각보다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프던 시절에는 몰랐던 무게가, 오히려 나아지고 나서야 느껴졌습니다.
감정이 돌아오자, 삶도 다시 말을 걸어왔고
그 말에 응답해야 하는 책임이 생겼습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던 때에는 선택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싫으면 피하면 됐고, 불편하면 모른 척하면 됐습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었고,
연결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회복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해야 했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해야 했고,
마음이 움직이면 그에 따른 행동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건, 다시 상처받을 가능성을 끌어안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기대하게 되고, 다시 실망할 수 있으며,
다시 흔들리고, 다시 아플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점이 때로는 두려웠습니다.
감정을 닫고 살 때는 아프지 않았으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아프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회복은 위로라기보다 요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느낄 수 있으니, 책임져라.”
“이제 알 수 있으니, 외면하지 말아라.”
삶은 그렇게 나에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회복이 힘든 이유는,
삶이 다시 나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기대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도망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무기력 뒤에 숨을 수도 없고,
예전처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을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회복된 감정은 나를 다시 삶의 중앙으로 데려다 놓았고,
그 자리는 편안하지 않지만, 정직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한, 다시 다칠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버리는 방식으로 살지는 않겠다.”


회복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를 책임질 기회를 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부담이더라도,
그것이 무겁더라도,
나는 이제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임감이야말로 내가 다시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3절 나는 그 방식으로 충분히 살아봤다


나는 이미 그 방식으로 충분히 살아봤습니다.
참는 방식으로, 무시하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마음을 주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는 걸
나는 아주 일찍 배웠습니다.


그래서 점점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고,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게 되었으며,
어디에도 깊이 발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겉으로 보면 단단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의연한 사람,
자기감정을 잘 관리하는 어른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었지만,
기쁨도 없었습니다.
상처받지 않으려 거리를 두었더니,
위로받을 일도 사라졌습니다.


그 방식은 분명 나를 살려냈습니다.
당장 무너지지 않게 해 주었고,
더 아프지 않게 막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함부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 방식밖에 알지 못했고
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방식은 ‘여기까지’ 데려오는 데까지만 유효했다는 것을요.


그 이후로는,
아무리 오래 붙들고 있어도
나를 앞으로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참는 삶은 나를 성장시키지 않았고,
무시하는 삶은 나를 회복시키지 않았으며,
회피하는 삶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 있는 척하는 상태를 유지해 주었을 뿐입니다.


나는 그 방식으로 충분히 살아봤습니다.
충분히 아파봤고,
충분히 무뎌져 봤고,
충분히 혼자여 봤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삶은 더 이상 연습이 아니라
반복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그리고 반복은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도, 살려내지도 못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나는
그 방식을 존중하되, 붙잡지는 않기로 합니다.


그때의 나에게는 고맙지만,
이제의 나에게는 맞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식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더 멀리 데려가지 못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결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4절 살아 있다는 건, 이제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선언이다


회복이란, 완전히 나아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상처가 흔적 없이 없어지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회복은
이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예전처럼 참아버리는 삶,
예전처럼 감정을 무시해 버리는 삶,
예전처럼 혼자서만 견디는 삶으로는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프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접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건,
다치더라도 느끼고,
흔들리더라도 말하고,
불안해도 연결되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여전히 망설이고, 여전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불안을 이유로
나 자신을 다시 접어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나는
불안을 느끼면 멈췄고,
상처를 예상하면 거리를 두었으며,
혼자가 되는 쪽을 더 안전한 선택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안전함이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를 점점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회복은
‘완벽한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로도 살아가겠다고 허락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건,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기대가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을 택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건,
이제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선언했다는 뜻이다.”


그 선언은 크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나에게 더 이상
이전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약속일뿐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5절 지금의 나에게 다짐하는 말


회복을 결심했다고 해서
매일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흔들렸고,
상황은 여전히 나를 시험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지금의 나에게 지킬 수 있는 말을 건네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다짐이 아니라,
다시 무너질 때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말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로 했습니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완벽해지겠다는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힘들지 않겠다는 다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힘들다는 이유로
나를 다시 방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느끼고, 말하고, 연결하겠습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와도
그 감정을 없는 척하지 않겠습니다.


상처받을까 두려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택으로
나를 고립시키지 않겠습니다.


말이 서툴러도 괜찮고,
표현이 어색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허락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도망치는 쪽을 자동으로 선택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이 문장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살아 있게 두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이전의 나는
나를 몰아붙이는 말로
하루를 견디려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나를 붙잡아 주는 말로
하루를 통과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다짐들을 크게 외치지 않습니다.
다만,
하루가 버거워질 때마다
조용히 다시 읽어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확신하게 됩니다.


“이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지금의 나를 앞으로 걷게 하고 있다.”


이 다짐은 완성형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때로는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다시 건넵니다.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6절 오늘의 점검 질문


이제 나는
하루를 무사히 버텼는지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괜찮다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으로는 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하루의 끝에서
나는 나에게 묻습니다.


“오늘, 나는 과거의 방식으로 살아냈는가
아니면 지금의 나를 선택했는가.”


작은 선택 하나,
말 한마디,
피하고 싶은 감정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나는 분명히 갈림길에 서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나는 오늘,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를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예전의 나는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곧바로 거리를 두고,
마음을 닫고,
아무 일도 없던 척 돌아섰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이 나를 얼마나 오래 멈추게 했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나에게 건넵니다.


“나는 오늘,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단을
행동으로 옮겼는가.”


대단한 변화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는지,
조금이라도 나를 더 존중하는 쪽을 택했는지
그 사실만을 확인합니다.


이 질문들에
매번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흔들릴 수도 있고,
되돌아가고 싶은 날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전의 삶과는 다른 길 위에 서 있다는 증거라는 것.


나는 이제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부담이 아니라
방향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이 질문 앞에
조용히 서 봅니다.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로
오늘의 삶은
충분히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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