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3

프롤로그: 정의의 대지에 첫 발을 디디다 -3

by 공인멘토



3. 침묵의 거리, 무표정한 삶

가온은 시의 중심부로 향하는 도심 회랑을 따라 걷는다.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아닌 정면만을 응시한 채 움직인다.
표정은 부드러우나 정제되어 있고, 목소리는 거의 없다.

거리는 깨끗하다 못해 건조하다.
자동 청소 드론이 바닥을 미세하게 문지르고 지나가고,
도로의 틈새 하나 없이 기계적으로 정렬된 타일들이 발밑에 펼쳐진다.
광고는 있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고, 영상은 감정 자극을 피하기 위한 색상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편안함’과 ‘질서’를 방해하는 자극은 철저히 제거된 도시.

가온의 눈에 띈 첫 시민은 어린 소년이었다.
소년은 쓰레기통 앞에서 망설이는 듯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봉지를 집어 재활용 칸에 넣는다.
그러고는 손목 장치를 본다.
“+0.02”
작은 미소.
하지만 진짜 웃음은 아니다.
그건 보상을 확인한 안도의 표정이었다.

가온은 주변을 둘러본다.
벤치에 앉은 노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엔 투명한 디지털 화면이 떠 있고,
그 위에는 각자의 ‘정의 평점 이력’이 그래프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한 사람이 조용히 손가락으로 수치를 조정하려다 멈춘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 제어’
‘상호 존중 모션’
‘평균 표준응답시간 1.2초’

여기서 모든 소통은 데이터 기반으로 정렬되어 있다.

길 모퉁이에선 젊은 여성이 노약자용 보행자를 위해 자동 개폐문을 열어준다.
노인이 인사를 건네려 입을 열지만, 여성은 이미 손목의 상승 점수를 확인하고 이동 중이다.
말보다 점수가 먼저 반응한다.

가온은 뭔가를 느낀다.
도시 전체에 ‘기계가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 듯한 위화감이 퍼져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그 기계적 행동을 진심이라 믿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은 일정하다.
기온은 쾌적하다.
소음은 없다.
갈등도 없다.
웃음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게 틀 속에 있다.

가온은 생각한다.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화해하지도 않는다.
서로를 해치지 않지만, 서로를 보지도 않는다.”

한 번도 부딪히지 않는 사람들.
서로의 이름을 몰라도 점수만 보면 된다고 믿는 사회.

가온은 의도적으로 누군가와 마주치려 걸음을 멈춰 본다.
그러나 시민은 부드럽게 반경을 피해 지나간다.
‘충돌 방지 센서’는 단지 차량만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선 사람 사이의 거리조차 사전에 설정된 프로토콜에 따라 계산된다.

그리고 그 거리 안에는
‘진심’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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