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의의 대지에 첫 발을 디디다 -2
새벽 6시 30분. 루세온 시티 외곽, 출입구 제7게이트.
검은 수트 차림의 경비 드론 두 대가 공중을 교차 순찰하고, 바닥의 감지 패널 위로 미세한 진동이 퍼진다. 이곳은 외부인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는 공간. 시의 가장자리에 위치했으면서도, 시민조차 평생 한 번도 이 구역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 고요함을 깨며 한 인물이 나타난다.
두터운 회색 외투에 모자를 눌러쓴 사내.
보폭은 일정하고, 눈빛은 흐트러짐이 없다.
그의 이름은 가온.
루세온의 시스템에는 등록되지 않은 이름이다.
게이트 앞, 자동 식별 구간에 들어서자 땅에서 열감지 판넬이 올라오고, 그의 몸을 아래에서부터 스캔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정면의 기둥에서는 드론 하나가 내려오며 기계음으로 말한다.
“외부인 감지됨. 정체 식별 요청.
문서 및 신체 정보 제출하세요.”
가온은 무리 없이 회답한다.
외투 안에서 꺼낸 것은 오래된 외부 방문자 등록증.
프레임은 긁혀 있었고, 유리칩은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지만, 내부 데이터는 손상되지 않았다.
그는 오른쪽 손목도 조용히 내민다. 그곳엔 ‘등록된 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맨살이 있다.
홍채 인식, 혈관 패턴 대조, 체온 일치, 두개골 밀도 검사까지.
총 4단계의 자동 스캔이 흐른 뒤, 중앙 스피커에서 짧은 음성이 떨어진다.
“확인 완료. 루세온 외부접속규약 제8조에 따라,
특별 임시 통행을 허가합니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게이트가 양옆으로 열리고,
그 너머로 도심이 눈을 뜬다.
가온은 말이 없다.
그러나 한 번, 숨을 들이쉰다.
그가 처음으로 밟은 도심의 바닥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세라믹과 금속 소재가 층층이 겹쳐진 복합소재의 발판은
가온의 걸음 하나하나를 정확히 압력 센싱하여 도시 중앙에 전달한다.
그의 무게, 체형, 걸음 속도는 즉시 도시 시스템에 등록되었다.
“접촉 인물 없음. 경로 추적 중. 위험지수 낮음.”
— 중앙 AI는 그를 감지하되, 배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공식적으로 통과를 허락받은 ‘데이터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핀다.
벽에는 광고 하나 없고, 사람도 없다.
도로는 사운드 없는 차량이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공기 중엔 먼지조차 없다.
그러나 냄새도 없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마른 공기.
꽃은 있으나 향기가 없다.
건물은 있지만 생활의 흔적이 없다.
모든 것이 존재하되, 감각이 없다.
가온은 작게 중얼거린다.
“여긴… 살아 있지 않아.”
그가 걷는 땅은 말라 있지도, 젖어 있지도 않다.
단지 ‘이상 없음’이라는 표시만이 남아 있는 도시.
그 속에서 가온의 발걸음만이 조금씩 이질적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유리 돔 저편으로,
지금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수백 개의 눈—
수십 개의 드론, 수천 개의 센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먼저 ‘그의 목적’을 간파하려 드는 중앙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온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스스로에게만 대답한다.
“숨을 찾으러 왔다.
여기에선, 그게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