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봄 햇살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 햇살에 딸 내보낸다"라는 속담이 있다.
흔히 봄의 따뜻한 햇살은 야외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봄의 강렬한 자외선은 피부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그 옛 어른들은 잘 알고 계셨던 듯하다.
그렇게 농사일로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딸의 피부를 걱정하시며, 시어머니들은 봄 햇살에 내보냈던 것은 아닐까. 소중한 딸의 피부를 지켜주고자 하는 깊은 배려가 그 속담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만 해도 햇살에 대한 고민이 크다. 나는 365일 내내 썬크림을 바르고 다닐 정도로 햇살만 쬐어도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라톤 대회 준비로 인해 야외 활동이 잦아지면서, 얼굴에 숨어있던 멜라닌 색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세상과의 만남을 한 멜라닌들은 이제 내 얼굴에 온통 득실거리고 있다.
요즘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눈밑으로 가득 들어찬 기미들이 꼭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 같다. 어릴 때의 주근깨, 청소년기의 여드름을 거쳐 이제는 기미로 내 얼굴을 장식해야 하는 피부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이렇게 무언가를 달고 살아가야 하는 피부는 피곤하기도 하고 돈이 참 많이 든다.
한여름 태양빛 아래에서 마음껏 서핑을 하고 바다 수영을 하며 한 여름의 기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단순히 바다 위에서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걱정 없이 지내는 그들의 피부가 부러운 것이다. 내가 여름이면 모자와 양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며 다녀야 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정말 어릴 때부터 주근깨, 여드름, 그리고 이제는 기미까지. 내 얼굴에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피부과 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달리기를 포기하든, 아니면 피부를 포기하든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하지만 나는 둘 다 포기할 수가 없다. 좋아하는 운동도 포기할 순 없고, 내 피부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욕심쟁이인 내가, 결국 두 가지를 다 지키려 들다 보니 더욱 피곤해지는 것 같다.
햇살 아래 숨어 있던 내 피부의 고민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햇살과의 줄다리기를 이어나가야겠다.
속담 속 시어머니의 마음처럼, 내 피부를 지키고자 하는 열정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내 모습에 적응하느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피부를 포기할 순 없다. 언젠가 햇살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그날까지 나는 끝없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욕심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