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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by 미려

통통하다 못해 뚱뚱한 여자아이.
동그란 안경을 쓰고 딱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있었다.

뭐든 잘 먹는 아이였다. 밥에 김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 반찬 투정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에는 커다란 무 한 조각.
"왜 깍두기가 아니라 동치미 무를 통째로 잘라 넣어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엄마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중학교 3학년 어린이날,
배달음식이라고는 없던 집에서 특식으로 나온 통닭과 피자를 먹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엄마는 의아했다. 잘 먹는 큰딸이 음식을 거부하다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으로 향했다.
동네 내과에서는 "맹장"이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지역의 종합병원으로 가서 온종일 검사받은 끝에 내 맹장은 ‘복막염’이 되어 있었다.
결국 한 달을 입원하며 개고생했다.


그렇게 한 달 후, 허리 30을 자랑하던 나는 반쪽이 되었다.
체질이 바뀌었다.
그 많던 머리숱도 줄었다.

사춘기 소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복대를 차고 다녔다.
의사 선생님이 "한동안 복대를 하라"고 했는데, 어찌나 말을 잘 들었는지.
긴 시간 동안 복대를 조이고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적게 먹게 되었다.
여드름이 가득했던 얼굴도, 이제는 반쪽이 된 얼굴 속에 가려졌다.


그렇게 사춘기는 지나갔다.


그리고, 그 소녀는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겼다.

어린 시절의 수술 후유증으로 골반이 틀어지고,
고관절과 발목이 아파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예전처럼 달리고 뛰고 싶지만, 이제는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타고난 체력이 약한 사람.
한때 뭐든 잘 먹고 통통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아침에 먹는 약, 점심에 먹는 약, 영양제라는 이름으로 늘어나는 알약들.
SNS 알고리즘은 온통 "고관절 회복 운동"뿐이다.

뚱뚱했던 시절, 사람들은 "보통 뚱뚱하면 유연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뻣뻣함을 가졌다.
그리고 그 뻣뻣함은 지금 나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내 몸이 조금만 더 유연했더라면..."

그렇다면 올리브유 한 병이라도 원샷하고 싶은 지금의 마음이 덜했을까.


나는 봉 하나를 잡고 빙글빙글 도는 폴댄스를 해보고 싶다.
요리조리 몸을 꼬고 풀며 필라테스를 하고 싶다.
다리를 힘껏 저으며 자전거 바퀴를 굴리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리를 까딱거리며 약해진 발목에 힘을 주는 것.
아빠다리를 못 하고 고관절을 살살 풀어주는 운동을 하는 것.
물속에서 아둥바둥 발차기를 하며 버티는 것.


이제 나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처럼 무리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해보기로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라도 좋으니.

뚱뚱했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 자신이니까.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조금씩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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