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언제부터인가 내 삶에 침묵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잔소리를 싫어하는 성향이라,
누군가에게 불만이 생겨도 바로 지적하지 않는다.
세 번은 참고, 그 뒤에야 겨우 입을 연다.
하지만, 때로는 세 번을 참지 않아도 이미 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는 굳이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이 차라리 나를 지켜주는 선택일 때가 많아진다.
2006년 결혼 이후 지금까지,
배우자와 반복되는 싸움의 주제는 늘 같았다.
"술."
술을 마시면 늦고, 연락이 잘되지 않는 배우자에게
처절하게 화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럴 거면 왜 사냐!"며 이혼서류를 꺼내 들고,
어디서 만나 서류를 건네줄지 구체적으로 통보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끝은 늘 같았다.
"미안하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그 말로 마무리되기를 10년, 아니 20년이 다 되어 간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맞고 틀림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불평불만으로 변해버릴 뿐이다.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예전처럼 처절하게 싸우기보다는,
반은 포기하고, 반은 인정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물론 이따금,
나 자신을 최악의 기분으로 몰아넣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 확실히 깨달았다.
"말해도 바뀌지 않을 사람에게는 침묵이 답이다."
침묵은 내 에너지를 지키는 방법이다.
소모적인 대화는 피하고, 나를 위한 평온을 선택한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하지만 생일 주간이라고 해서 가족이라고 꼭 무엇을 해주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개인 일정으로 2박3일 시간을 보낸 남편에게 섭섭함도 없었다.
아침에 전복을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한 잡채를 만들었다.
미역국은 제법 맛있었지만, 잡채는 대실패였다.
생일 소박한 아침상을 차리고
늦잠 자는 아들을 깨워본다.
엄마의 생일이라며 침대 밑에서 주섬주섬 꺼내 건네받은 택배 상자.
상자 속에는 향기로운 디퓨저가 있었다
나는 뜯지 않은 상자를 손수 열어 건네주길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편지는 없냐?"고 묻는 나에게,
아들은 말했다.
"엄마, 생일이라고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또 깨달았다.
가족이라고 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각자의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 바로 설거지를 하는 나.
밥을 먹고 나서 그릇을 깨끗이 헹궈두고 담궈 두는 너.
밥을 먹고 그대로 두는 또 다른 너.
우리는 그렇게 다른 생각과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다름을 바라보며,
이제는 불필요한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