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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멈춘 당신, 한 발 내디딜 준비는 되었는가?

by 미려

꽃샘추위가 매서운 주말이다. TV 화면 한쪽에 ‘서울 -18도’라는 자막이 선명하게 떠 있다.

아침부터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와, 지금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자 양쪽 주머니 속 핫팩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쥔 채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눈이 내려서인지 전광판에는 연착이라는 글자가 자주 뜨지만, 다행히 내가 탈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한다.

오랜만의 당일치기 서울 일정이다. 아침 기차로 올라갔다가 저녁 기차로 내려오는 하루.


그런데 나는 왜 지금 서울로 향하고 있을까?


한때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성장 마인드가 크게 요동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온라인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면서 나는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격렬한 변화를 겪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마흔이 훌쩍 넘어서 찾아왔다.

몇 해 동안 나는 배우고, 일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지만, 결과는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의 에너지를 쏟아가며 누군가의 일을 도왔고,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나를 혹사시켰다.

하루 24시간을 새벽과 아침, 퇴근 후 저녁까지 쪼개어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살고 있지 않다.


이제는 고갈된 에너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쉬어야 할 때 쉬어야 한다는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

한때 커피를 잔뜩 마셔가며 버티던 나는 이제 없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다시금 작은 마음의 동요와 함께, 잔잔한 움직임을 시작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고 있다.


2025년을 준비하며 비전 보드를 그려가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사람들의 눈빛이 선명하게 빛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

그들을 보며 문득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도 한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래,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라며 웃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주춤하고 있다.

한때는 내가 앞서가며 누군가의 동경을 받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나는 잠시 멈추어 있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느리게 보이겠지만, 이 멈춤 또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다.

금 나의 마음 속에 잔잔하게 울리는 파동을 가만히 바라본다.

예전처럼 격렬한 에너지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에너지가 잔잔하게 마음을 채운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간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부상으로 잠시 달리기를 멈춘 것처럼, 나의 삶도 지금은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다시금 내 길을 달릴 날을 꿈꾼다.

그날이 오면 오늘의 멈춤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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