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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꼬인 날, 내가 배운 것

by 미려

주말 아침,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행을 이렇게까지 오래 고민해본 건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나의 배움은 '못 먹어도 고!'였다.
일단 부딪히고 보자는 마음,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다짐.
그게 나의 태도였고, 성장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몸과 마음 한켠에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기차표 가격, 모임 회비, 밥값까지 더하니 하루가 30만 원 가까이 든다.
내 월급의 몇 분의 몇인지 계산해보다가 멈칫했다.

이만큼 쓰고 나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과연 얼마만큼일까.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계와 행동은 나의 마음을 쉽게 멈춰 세운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집에 양해를 구했다.
서울행 기차표를 어렵사리 예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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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를 마시며 역까지 달리는 길.
오랜만에 나서는 길이라 그런가, 아랫배가 아파 혼쭐이 났다.
몸이 먼저 긴장을 알려온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이, 아침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내 몸은 내 마음의 긴장도를 말해주듯,
속 깊은 곳의 무언가를 자꾸만 쏟아냈다.


내가 향하는 곳은 2년 전 AI를 처음 접하며 알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
'AI 강사 과정'에서 만난 이들과, 오늘은 소개 영상 촬영이 있는 날이다.
홈페이지에 업로드할 목적으로, 각자 영상을 찍기로 했다.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서울역은 여전히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치열하게 사는 얼굴들,
그 안에서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다짐이 저절로 올라왔다.
사람은 서울로 와야 한다는 말, 오늘따라 더 와닿는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내가 마지막이었다.
가장 먼 곳에서 오는 나를 배려해 촬영 순서를 끝으로 배정해주셨다.
그 덕에 차 한 잔을 마시고, 도시락도 먹으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본업이 있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는 나.
어두운 실내, 환한 조명, 카메라 앞에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디지털미디어교육협회 강사, 이지영입니다.”


준비한 말을 꺼내는 사이, 순간순간 말이 꼬였다.
멈칫거리던 내 말은 결국 자신감 없는 톤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 틈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전문 강사는 아니라서요...” 잘부탁드려요...

말을 뱉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나를 얼마나 작게 보고 있었는지를.
내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를 끝내고, 편집자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건넨다.
물 한 잔을 마시며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나는 지금 전문 강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배움이라는 작은 불씨를 전하고 싶은 사람.
그게 타오르든 꺼지든, 나는 그 씨앗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아직 부족하다.
한가득, 두가득, 세가득.
그 사실을 오늘 또렷이 느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영상 촬영 중에 말이 꼬였던 순간이 자꾸 떠올랐다.
아쉬움이 크다. 창피함도 조금.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는 걸 나는 안다.
조금 움츠러든 마음을 쓰다듬으며, 내게 말 건넨다.

“그래도 너, 잘했어.
조금 작아진 오늘의 너도 괜찮아.”


나는 안다.
지금의 이 경험들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걸.

계산기를 두드리며 망설인 시간조차
내 안에 작게나마 ‘배움의 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그 작은 씨앗에 물을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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