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
지인들과 소통하는 단톡에 사진 한장이 올라온다.
고3아들의 졸업식을 마친 지인이 자신의 아들이 보던 책을 나눔 하기 위해 올린 사진 한 장
그중에 보인 책 제목이 눈에 들어 왔다.
익숙한 시 한 구절이 생각 나는 책제목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처음 이 시를 알고 나는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짧은 저 세줄이 나의 가슴 속에 다가와 도닥여주는 속삭임.
뭔가 이렇다할 것이 없는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그림과 비전도 없이 살아온 삶
뒤늦게야 내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스스로 다독인 나의 삶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온 나의 삶
그런데 오늘 그 시처럼 나에게 또다른 울림을 주는 책제목은 나에게 위로를 준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무언가 해놓은게 여전히 없는 나에게...
유난히도 오늘아침 새벽수영은 너무 힘이 든다.
두팔과 두다리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앞사람과의 거리는 한참 뒤쳐져 있다.
오랫동안 수영을 하는 시간들은 흘러흘러 가지만 나는 여전히 맨뒤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와 험난 파도 속에 힘을 내지만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채 현생을 겨우 유지하고 사는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얼마전 AI에게 물어본 나의 커리어운
20대, 30대를 지나 살아가는 40대는 나의 삶의 변곡점 뒤
50대가 되면 더 결과물이 나와 운이 상승하는 사람으로 50대, 60대가 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살이라는 답변들
믿거나 말거나 일지 모르는 결과물이지만 나의 마음을 잠시 다독여 준다.
아 그렇다.
사람마다 자신의 꽃이 피는 시기가 있다.
누군가는 20대에 인서울을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그리고 40대에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되는 사람도 있을테고
또 누군가는 우여곡절끝에 전문대를 들어가 우여곡절끝에 30대말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40대가 되어 대기업에 입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바로 내 막내 동생의 이야기이다.
공부할 이유를 몰라 방황하던 사춘기의 소년은
그때 본 사진한장의 프랑스 어느 해변을 마흔이 넘어 프랑스 끝과 끝을 자신이 직접 운전해서 찾아간 그 해변에 도착한다.
자신이 삶을 뒤돌아보며 스스로를 다독여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다독였을 시간들
그렇다.
사람마다 자신이 꽃이 피는 시기가 진짜 있다.
이시간
나에게 속삭여 본다.
미려야, 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
그리고 또 꽃이 아니면 어떠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