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도 고생 많았다.
카톡한 줄이 나를 뭉클하게 만든다.
과거 상사였고, 지금은 회사를 떠난 이사님
그분은 내 삶에 중요한 어른 중 한 사람이다.
회사에서는 나는
좀 특이했고, 시끄러웠고
때로는 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무 특성상 외부사람들을 많이 상대했고
민원을 받고, 싸우고, 설득하고, 부딪히며 일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부서장으로 오신 그분은
처음엔 나를 오해했다고 했다.
"여기 와보니, 너가 일을 참 잘하더라.
너는 보물이다."
그 한마디가
몇 십 년 묵은 체증을 내려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
내가 괜히 버틴 게 아니라는 보상.
그분 덕분에 나는 몇 가지 상을 받았고
회사 안에서 인정받는 경험도 했다.
퇴사하셨을 때
홀로 선물을 보내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얼마 전에는
첫 아들을 장가보낸다며 연락이 왔다.
함께 밥을 먹었다.
여전히 유쾌했고, 여전히 단단했다.
퇴사 후의 삶은
자리도, 직함도, 권한도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화려했던 직함이 아니라
지금의 마음가짐이 그분을 빛나게 했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잘 정리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된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 수 있겠구나.’
이따금 “잘 계시죠?”라고 물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퇴사한 후배가
“선배님, 잘 계시죠?”라고 연락을 해올 때
내 마음이 괜히 따뜻해지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라니.
이거 철 드는 거 아닌가.
철이 든다는 건
곧 늙는다는 거잖아.
그럼 철 들지 말까.
계속 좀 시끄럽게 살까.
계속 좀 독하게 살까.
계속 좀 불편한 사람으로 남을까.
그래야 덜 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런데 또 한편으론
철이 드는 게 꼭 늙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덜 증명하려 애쓰는 상태일지도.
그래도 아직은
완전히 점잖아지진 말자.
적당히 까칠하고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웃기게.
철은…
천천히 들자.
너무 빨리 들면
진짜 늙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