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 이렇게 무거울 줄은

by 미려

"슬픔 속에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기사 속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재를 읽었다.

읽는 내내 "어떻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전쟁통에서 살아남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차라리 사라지는 게 맞는 걸까.

그 질문을 실제로 해야하는 삶이라니.


6.25전쟁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등


우리나라 교과서 속에서 배운다.

그때니까,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비극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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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AI가 일상을 바꾸고

세상이 빠르게 진화하니느 이 시대에도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란의 긴장 소식,

러시아를 위해 파병된 북한군 이야기.

그리고 오늘,

지하에서 수업을 듣는 우크라이나 아이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큐모의 군사충돌이라고 한다.


제네바 협약에는

전쟁 중에도 아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약속이 있다.

학교를 공격 목표를 삼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


그 약속 덕분인지

아이들은 지하 공간에서 공부를 한다.


포성에 갖힌 유년기.


'전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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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공습경보가 울리는 삶.

그 속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


평범함이 소원이 되는 세상이라니.


우리는 늘 평균 이상을 바란다.

성적도, 돈도, 명예도.

조금 더 위로,

조금 더 앞서기를 원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공습이 울리지 않는 하루,

학교를 지상에서 다닐 수 있는 하루,

창문을 열어도 포성 대신 바람 소리가 들리는 하루가

이미 평균 이상의 삶이다.


나는 가끔

내 일상을 투덜거린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사는 게 왜 이리 팍팍하냐고,


아침에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며 속이 터지고,

아이의 성적을 보면 한숨 쉬고,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열이 받는

그런 하루들.


그런데 오늘은

불평들을 조금 멈춰본다.


아들이 있고

갈 곳이 있고,

할,일이 있고,

무엇보다 하늘을 보며

빛나는 햇살을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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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줄 알았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소망이라는 사실.


그래도 내일 또 투덜거리겠지.

출근하기 싫다고

일이 만다고.


다만,

그 투덜거림 속에서도

이 평범함이 공짜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평범함이

어디선가에는

가장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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