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전화벨 소리에 공포감이 드는 적도 처음이다.
얼마 전 모 쇼핑몰에서 바지를 하나 샀다.
약간 두꺼운 모직, 크림색.
키가 작은 나에게는 다소 긴 느낌이었고
나팔 스타일은 수선을 해도 모양이 살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오염까지 되어 있었다.
반품을 결심했다.
며칠 전 밤 9시 52분.
자기 전 한 통의 문자.
반품비를 동봉해서 보내라는 판매자의 문자였다.
어제 저녁,
퇴근하고 막 밥을 먹으려는 식탁에서 전화가 왔다.
오물이 있지만 자신들은 완벽한 물건을 보냈으니
오물은 고객이 집에서의 문제로
왕복 반품비 6천원을 내라는 전화였다.
입금을 하겠다고 했다.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그 말이 나와야 전화가 끊길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고객센터에 연락했다.
판매자와의 대화는 이미 불가능했으니까.
그리고 바로, 수십 통의 전화가 울렸다.
이 사람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밥을 먹고 있든
말을 하고 있든
고객센터와 통화 중이든.
자신의 말만 있었다.
자신의 억울함만 있었다.
자신의 6천원만 있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다림이 없다는 건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내 말을 들을 틈도
내 상황을 볼 여유도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
그런 사람과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무서웠던 것 같다.
아무리 말해도 닿지 않는다는 느낌.
그 막막함이 공포였다.
살면서 배려는 거창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잠깐 기다려주는 것.
상대가 말할 때 듣는 것.
그 작은 것이 없는 사람을
그날 처음 제대로 만났다.
식탁 위 밥은 식어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도
한동안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