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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Feb 01. 2024

악마는 집착을 입는다

워드에세이: Satan, devil, obsess

   하루에도 무슨 이유인지 모를 많은 일이 벌어진다.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원인이 있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겠지만 순전히 원인도 결과도 나에 관한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날도 매일 자던 시간에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정신은 말똥말똥하고,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영상과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잠을 자려고 머릿속 잡동사니들을 지우고 지워도 어디선가 계속 나오고, 그 구멍을 메꾸면 또 다른 구멍이 생겨서 잠을 자려는 내 의지를 꺾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팔과 다리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데 잠은 왜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오래전 미국의 한 대학에 있을 때의 기억이 어느 틈에서 흘러나왔다. 기숙사 앞에서 자전거를 꺼내고 있는데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둘은 연인인 것 같았지만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두세 걸음 앞서가는 남자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왜 그거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Why are you so obsessed with that?)


   여자의 목소리는 엉뚱하게도 내 귀에 꽂혔다. 그리고 남자는 무엇에 사로잡혔는지 사랑하는 여자의 간절한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목소리와 장면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요즘도 obsess(집착하다)라는 단어를 보면 그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온통 어떤 것에 생각이 쏠려있어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상태. 그것을 우리는 집착이라고 부른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 생각나는 것과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것. 둘은 꽤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밤을 지새웠다.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 요즘은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obsess에서 힌트를 찾아볼까? obsess‘ob-’‘sed-’가 합쳐진 말이다. ‘ob-’는 라틴어로 반대쪽에서 나와 맞서 있는(against) 상태를 뜻하고, ‘sed-’는 고대어로 앉다’(sit)의 뜻이다. 그러니 이 말은 나와 맞서서 앉아있다는 말이 된다. 나와 마주 앉아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는 간단한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내 앞에 마주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상상만 해도 신경이 쓰이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 시선에 나는 사로잡히고 만다. 그렇게 사로잡힌 상태, 그것이 곧 집착이다. 한번 사로잡히게 되면 헤어나고 싶어도 헤어날 수가 없다.


   내 앞에 앉아 나를 응시하고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존재는 무엇일까? obsess16세기 초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사용된 걸 보면 내 앞에 앉아서 나를 사로잡고 있는 존재를 서양에서는 악마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서양에서는 악마를 뜻하는 단어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데블(devil)과 사탄(Satan)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두 단어의 어원에도 맞은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devil은 그리스어로 ‘dia’‘ballein’이 합쳐진 말인데 ‘dia’가 바로 건너편에 있다는 뜻이고, ‘ballein’던지다의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건너편으로 던진다, 즉 맞서 있는 곳을 향해 공격을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어 디아볼로스(diabolos)는 공격의 대상인 적군, 곧 악마를 뜻하고, 이 말이 영어에서 devil로 정착하였다. 사탄(Satan)은 기독교에서는 악마를 지칭한다. 이 말은 원래 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루어에서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서양의 악마는 맞은편에 있는 존재, 곧 내 편이 아닌 적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셈이다.


   쉬는 날이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니 벌써 아홉 시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밖에 눈이 오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내는 커피가 담긴 따뜻한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 한 폭의 수묵화야. 어쩌면 저렇게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지?” 그제야 나도 창문 밖을 보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고, 큰일 났네하며 한숨이 나왔다. 열 시에 약속이 있었다. 눈 때문에 차가 막힐 것이고, 걷기도 불편할 것이고, 약속 시각에 늦을 것이다. 휴일 아침 여유로움은 순식간에 정신없는 긴장감으로 돌변했다. 나는 아름다운 수묵화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해가며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였다.


   후다닥 신을 신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 앞에 서는 순간, 내 앞에 펼쳐진 하얀 눈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똑같이 하얀 눈이 내려앉아(sit) 있는데, 아내는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고, 나는 걱정과 불안과 긴장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얀 눈은 그저 눈일 뿐인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토록 다르고 묘할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 인류는 내 앞에 다른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와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항상 긴장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본능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걸까. 평화로운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늘 불안과 걱정 속에 산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라고 마음을 다독이지만 나와 다른 것, 내 맘에 들지 않는 것과 마주하는 순간, 의지는 꺾이고 나 시선과 마음은 사로잡히고 만다. 그 물건에, 그 사람에, 그 생각에 …. 때로는 삶이 참으로 불편할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오늘도 눈을 맞으며 약속 장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왕이면 내 앞에 악마를 뚫고 힘겹게 나아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앞에(against) 내려앉는(sit) 함박눈이 포근하고 아름답다고 되뇌면서. 그러면 곧 악마는 천사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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