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뜨거운 태양이 뿜는 빛과 열기를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가까운 편의점을 마다하고 그보다 북쪽으로 100미터를 더 걸어야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이라는 말의 의미를 뒤로 하고 굳이 더 걷는 수고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아랫집보다 윗집이 더 넓고, 탁자도 더 많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잠시 거쳐 가는 곳이긴 하지만, 내게 그곳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었다. 지친 머리를 식히기엔 그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북적이는 식당에서 뜨거운 열기를 맞으며 정신없이 들이켜는 점심도 좋지만, 혼자서 김밥 한 줄에 바깥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가벼운 점심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예쁜 인테리어에 둘러싸여 음악과 함께 수다를 떨 수 있는 카페도 좋지만, 커피머신에서 막 내린 커피를 들고 “댕댕댕” 종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백색 소음처럼 듣는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가는 곳, 하지만 오래 머물러 있는 나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 가끔은 그런 곳이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윗집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한 아랫집은 창밖 풍경이 재미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스마트폰을 보거나 몸을 틀어 먼 곳을 바라보고만 있다. 하지만 윗집의 창밖 풍경은 늘 흐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인다.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걷는 엄마, 황급히 뛰어가는 택배 기사, 한바탕 웃으며 폴짝거리는 학생들. 그들의 불규칙한, 그러나 산만하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편의 잔잔한 무성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것 같다.
오전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허리가 뻐근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컴퓨터 앞에 세 시간째 앉아 있었다. 잠시라도 걷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밖을 나섰지만 이내 후회가 막급하였다. 습도를 가득 품은 뜨거운 공기에 숨이 턱 막힌다.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예뻐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래도 기왕 일어섰는데, 편의점 커피라도 마시고 와야겠다. 그렇게 꾸역꾸역 100미터를 걸어 올라간 곳에는 간판 대신 커다랗게 인쇄된 두 글자가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임대. 열흘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저 안에서 뜨거운 라면 국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 멀쩡했던 편의점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석 달 전쯤 집 앞에 있던 샤부샤부 집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 서운함과 공허함이 다시 살아났다. 10여 년 전 막내가 한창 개구쟁이였을 때, 그곳은 외식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네 맛집이었다. 차분히 앉아 우아한 식사를 한다는 건 꿈나라 얘기였던 시절이었다. 맛집이라고 찾아간 식당에서 아이는 놀이터처럼 뛰어다녔고, 엄마와 아빠는 식당에 피해를 줄까 봐 쫓겨나듯 짐을 싸 들고 나와야 했던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 샤부샤부 집만은 예외였다. 다채로운 채소와 어묵, 만두, 고기, 칼국수, 죽이 번갈아 가며 변하는 식탁도 아이의 눈길을 끌었지만, 식당 주인 부부는 아이의 장난을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 주셨다. “어, 우리 개구쟁이 왔구나.” 부부는 어느 집 아이든,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이 들어오면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몇 번 낯이 익으면 꼭 안아주시기까지 했다. “그사이에 정말 많이 컸네?” 이런 인사도 좋았고, “이제는 뛰어다니기 싫으니?”라는 농담도 정겨웠다.
재작년 연말연시, 한창 바쁜 일손을 거들러 나온 부부의 딸과 아들도 인상이 참 선했다. 이번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딸과 군대를 전역했다는 아들은 오랫동안 집안일을 해본 사람처럼 서빙을 척척 해내었다. 따뜻함이 그들 얼굴 깊숙이 배 있었다. 자녀분들을 어떻게 저렇게 잘 키우셨냐는 물음에 “말도 마세요. 저 녀석이 소문난 장난꾸러기였어요.”라며 겸연쩍게 웃던 아저씨의 얼굴이 기억난다.
코로나19라는 무시무시한 풍파 속에서도 건재했던 식당은 문을 닫았다. 예고라도 했다면 마지막 만찬이라도 하러 갔을 텐데…. 어느 날 아침 간판은 떼어져 있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비에 젖어 축 늘어진 현수막 위, 임대라는 글자가 그렇게 허무하고 허전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석 달이 지난 지금도 현수막은 힘없이 바람에 나부낀다. 개구쟁이 아이의 흔적이 구름처럼 건물 위에 떠 있는 것만 같다.
임대라는 두 글자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나는 이마에 손을 대고 불 꺼진 통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각종 상품으로 가득했던 진열대는 물론이고 바깥 풍경을 마주하며 앉았던 의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쓰레기도 없는 말끔한 바닥. 사라짐이 그렇게 빨라도 되는 것인가. 그것이 정해진 결과라면 서서히 내가 눈치챌 수 없도록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일까.
특별히 오기가 났던 건 아니었다. 머리를 비우려 일어섰는데 예상보다 더 크게 비워지고 허무해진 감정은 당황스러웠다. 다시 아스팔트 열기를 참고 100미터를 내려갔다. 버스 정류장 앞 편의점은 그대로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길로 500미터 더 내려가면 또 다른 편의점이 있다. 알고는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혹시 그곳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까.
그곳 편의점 앞에 펼쳐진 흑갈색 나무 덱에는 파란색 파라솔 3개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파라솔 그늘 아래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할머니는 탁자 밑 고양이를 보고 있다가 이내 허리를 펴고 나를 보았다. “어서 오세요.” 목소리가 맑다. 편의점 직원 같지는 않은데 누구실까? 점주의 가족이신가? “안녕하세요.” 나는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댕댕댕” 종소리가 울린다. “어서 오세요.” 이번엔 유니폼 입은 점잖은 아저씨가 나를 맞이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공간을 살펴보았다. 에어컨 바람은 시원하였으나 공간은 답답했다. 진열대 사이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날 만큼 좁았고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 “더우실 텐데 죄송해요. 여기가 좁다 보니…. 파라솔 의자에라도 앉으시면 바람이 좀 불어요.” 아저씨가 계산하시며 말했다. 아무 말 없이 바코드를 찍는 편의점이 익숙한 내게 이런 긴말은 생소하기만 하다.
아저씨 말대로 커피를 들고 파라솔 의자에 앉았다. 한쪽 끝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내게 다가와 물티슈로 탁자 위를 닦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여기가 좀 지저분해서….”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주춤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안에서 상황 파악을 한 아저씨는 문을 살짝 열고 말했다. “여기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신데요, 종종 여기 오셔서 무료 봉사를 하세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편의점에 들어가는 손님들은 할머니께 먼저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양이, 오가는 인사, 웃으며 건네는 말 한마디, 그리고 간간이 부는 여름 바람. 영락없는 어릴 적 구멍가게 모습이 여기에 있었다.
무언가는 짧게, 또 다른 무언가는 오래도록, 생겨났다 사라진다. 물이 마르고 고이기를 반복하듯, 나를 담은 공간도 비워졌다 채워진다. 아쉬워 사라지는 순간에도 아련하게 채워주는 순간이 있음에 위안을 얻는다. 저쪽에서 서너 명의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편의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할머니의 맑은 목소리가 또 울린다. “학교 끝났니? 아이스크림 먹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