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11월 중순 날씨치고는 햇볕이 꽤 따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2층 높이로 나란히 줄지어 선 건물을 따라 둘레가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담장 밖 조용한 주택가에는 고양이 한 두 마리가 지나갈 뿐 인적이 드물었고, 두툼하고 손바닥만 한 낙엽이 보도블록 위에 내려앉아 요람처럼 가벼이 흔들렸다. 뚝! 바로 옆 나무 꼭대기에서 소리가 나더니 진갈색 나뭇잎 한 장이 바람을 타고 내려온다. 떨어지는 선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아래로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종이배가 물결을 따라 흔들리듯, 종이비행기가 바람을 따라 돌아내리듯 빙그르르 한 바퀴 돌더니 건물 지붕으로 내려앉았다.
뚝! 이번엔 세 그루 건너 왼쪽 위를 쳐다본다. 톡톡거리며 굵은 가지를 계단 삼아 내려오다가 바람결에 조금 밀려나더니 벤치 위로 떨어졌다. 뚝! 이번엔 덩굴장미 위로…. 또 이번엔 내 발아래로….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과 달리 이름 모를 커다란 나무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처럼 잎을 하나씩 떨어뜨린다. 그리고 잎은 우아하게 착륙한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는 긴 침묵이 있었다. 혹여나 내 발걸음이 그들의 약속된 공연을 방해할까, 나는 한동안 숨죽여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겐 예고 없이 불규칙적으로,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약속된 신호에 따라 공연은 계속되었다. 드문드문 하늘을 덮은 저 많은 나뭇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내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느 날까지 밤이고 낮이고 이어질 것이다.
“엄마 나이가 되면 느린 음악이 좋아져.”
10살 무렵, 학교에서 돌아오면 안방 한쪽 벽면에 놓인 오디오에서는 늘 음악이 흘렀다. 당시 전자 회사에 다니던 삼촌에게 구입한 어머니의 가장 큰 보물이었다. 어머니는 주로 느린 음악을 틀었다. 빠르고 신나는 음악을 들려 달라고 보채는 내게 어머니는 어른이 되면 느린 음악이 좋아진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본래 음악이란 신나고 재밌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느린 선율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파악할 수 없는 불규칙한 멜로디를 어머니는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계셨다.
느린 음악처럼 하루하루는 무료했다. 먹을 것이 많고, 간혹 선물이 생기며, TV에서 재밌는 프로를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날들을 기다렸다.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1년에 몇 안 되는 그런 날 말이다. 그런 날은 기다린 보람도 없이 유독 빨리 지나갔다. 이후엔 급경사를 타고 내려온 물이 깊은 물웅덩이를 만나는 것처럼 흐르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고요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힘찬 리듬과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에 맞춰 신나게 시간이 지나갔으면 했다. 다음 크리스마스, 다음 설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러했다.
영화 「플래툰」이 전국 모든 극장에 유행처럼 내 걸렸던 때는 1986년이었다. 벌판에서 뒤쫓는 베트남군의 총격에 두 팔을 벌리고 처절한 운명을 맞는 미군 병사의 모습은 포스터에서, TV 광고에서, 영화 잡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유행에 민감하기는커녕 반발심이 일었던 10대 소년은 누구나 다 본다는 영화가 보기 싫었다. 30대가 된 어느 날,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그 장면이 왜 그리 유명해졌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함께 연주되었던 사운드트랙, 바버(Barber)의「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급박한 전쟁터의 절규와 반대로 아주 천천히 느리게 흘러나왔다. 배신과 비애, 공허와 무기력, 연민과 동정이 현을 타고 천천히 흘러나왔다. 어머니 말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어른이 되면 느린 음악이 좋아져…. 그것은 엉켜버린 감정이 느린 음악을 타고 한올 한올 풀려나와서 내 속을 막고 있던 덩어리의 정체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숨죽여 바라본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휘돌아 내려앉는 낙엽은 적막하지 않았다. 줄지어 선 나무에 매달린 수많은 잎 중 어느 것이, 언제, 어떻게,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그 불투명함도 쓸쓸하지 않았다. 이제야 나도 엄마 나이가 된 걸까. 겹겹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낙엽은 다시 아름다운 꽃이 되고 열매가 될 것이다.
올해는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더 천천히 오길 바랐다. 역대 최악이라던 올여름 불볕더위도, 그 지겹던 축축한 기운도 빨리 지나가라 기도하지 않았다. 요술 방망이로 시간을 멈추는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갔으면 했다.
전날 밤,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이모님이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나의 빈 곳을 살뜰하게 채워주셨던 이모님이 그 밤에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침 출근하는 시간까지도 별 소식이 없었지만, 해가 중천으로 향할 무렵 부고가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11월 중순 날씨치고는 햇볕이 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