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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18. 2024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라

만일 당신이 곧 죽게 되어,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화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왜 당신은 망설이고 있는가? - 스티븐 레바인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그 누구도 사랑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사랑을 더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다 말하고 죽으려 한다.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왜 나는 그동안 망설이고 있었을까. 곧 죽게 된다고 하면 이렇게 당장이라도 사랑을 표현할 거면서, 해보지 못한 걸 다 해보고 죽겠노라고 결심할 거면서 왜 우리는 지금 당장 그러지 않까?



우리는 어쩌면 알게 모르게 생을 살 것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릇처럼 말이다. 아주 고약한 버릇. 우린 삶을 계속 미뤄댄다. 누구보다 삶을 뒤로 미뤄온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2020년, 군인이던 나는 생활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8시에 선선한 공기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혹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있었다. 어떤 책인지 확실치 않지만 나는 어떤 구절을 읽다가 생뚱맞게도 마치 내일 죽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아주 생생한 죽음이었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모른다. 구절의 내용은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한데 난 오늘 밤이 마지막 사람인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강렬한 죽음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느낀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단 한 마디였다. '아직이야.' 죽음을 느끼는 순간 나는 '아직'이라고 외쳤다. 날 죽음으로 데려가려는 무형의 무언가에게 아직이라고 소리를 냅다 질러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한심해 보였다. 나 역시 죽는 순간이 찾아오자 결국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받지 못한 걸 아쉬워하기보다 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그럼 이제 중요한 건 왜 내가 '아직이야'라고 말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지 3년이 지난 후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는 삶을 미루고 있었다. 그때는 군생활 중이었으니 특히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군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자기 계발을 했던 이유는 모두 전역 이후에 잘 살아보기 위함이었다. 내 진짜 인생은 언제나 전역 이후에 있었다. 내 진짜 인생은 언제나 행복해진 후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진짜 인생을 살기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했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나에게 책이란, 자기계발이란 현재를 즐기는 방법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결국 죽음 앞에 서자마자 내가 얼마나 미래를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 모든 행동, 모든 믿음, 모든 생각과 감정은 모두 미래를 살고 있었다. 1초가 채 되지 않는 죽음의 순간이었지만 그 경험은 분명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죽음 앞에서 삶은 가장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 당당히 마주설 수 있는 자가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산다. 지금 바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복을 미루지 않는 사람.



삶을 미뤄대는 고약한 버릇을 고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죽음을 명상하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단 1초 만에 우선순위를 고친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삶을 잘못된 방식으로 이끌어왔는가를 깨닫는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나가떨어지고 정말로 중요한 것만 남는다. 자연스레 삶에서 '낭비'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감사와 사랑으로 넘치게 된다. 삶은 그저 기쁘기 위한 것이 된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갑자기 생각나는 삶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흥미를 잃은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는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일상적인 형태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 돌이킬 수 없도록 음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습관적인 믿음을 버린다면, 우리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게 보이는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수많은 시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오늘이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 스티브 잡스



나는 깨달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에게 목표는 없다. 목표란 한계를 의미하기에. 목표는 언제나 삶을 뒤로 미루는 것이기에. 삶의 모든 목표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산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라. 목표 없이 사는 법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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