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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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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세르반테스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 <돈키호테> 中



돈키호테를 읽은 뒤로 점점 확실해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에 미쳐있습니다. 다만, 미쳐 있는 정도와 분야가 다를 뿐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누군가에겐 현실이,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현실주의자들도 결국 어떤 관점에서는 이상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과 관점이 다르거나 정도가 다르면 미쳤다고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 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이 세상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주눅 들지 맙시다, 우리. 


돈키호테, 답 없는 답을 말하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함께 다니는 산초는 현실주의자입니다. 돈키호테와 반대죠. 그런 산초가 돈키호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며 묻습니다. 


그런 짓을 한 기사들은요, 그런 바보짓이나 고행을 할 이유가 있었거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나리께서는 일부러 그렇게 미쳐야 할 이유가 있나요? 어느 귀부인이 나리를 멸시했나요? 아니면 둘시네아 델 토보소 님이 무어인이나 혹은 기독교인하고 무슨 유치한 장난이라도 했다는 증거라도 잡으셨나요? 


이상주의자들이 정말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왜 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어?" 돈키호테가 속 시원한 답을 줍니다.  



"바로 그거야. 그게 내 일의 절묘한 점이네. 편력 기사가 이유가 있어서 미친다면 감사할 일이 뭐가 있겠나. 핵심은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미치는 데 있는 것이야. 내 귀부인으로 하여금, 아무런 이유도 동기도 없는데 저만한 일을 하시는 분이니 무슨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거지."



돈키호테를 읽은 뒤로 사람들이 제게 왜 그걸 하고 있냐고 물으면 저는 그가 말한 그대로 대답합니다. '미치는 것의 핵심은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미치는 데 있는 거야.' 미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정말 미쳐버리면 '그래 뭐, 저렇게 미쳐서 하는 이유가 있겠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열정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습관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습관을 만들려고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겐 '목적'이나 '목표' 따위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나는 살을 빼기 위해서 매일 운동을 할 거야.'라는 목적과 목표. 운동이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동기와 보상이 습관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습관이 된 사람에겐 '목표'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습관처럼 그것을 합니다. 그들에겐 습관 자체가 목표이자 보상입니다. 이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습관은 목표에 집착하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 웬디 우드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애쓰는 자에게만 목표와 이유가 필요하다." 매일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왜 운동을 하시나요?'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망설입니다. 부끄러워서 그럴까요? 겸손한 척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 수는 있지만, 사실은 운동 자체가 목적일 뿐입니다. 하고 보니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건강해질 뿐입니다. 하지만 운동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면 술술 대답이 나옵니다. '저는 예전부터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저는 한때 매일 책을 읽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정말 나는 왜 책을 읽지?' 처음엔 제가 잘못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분명 내가 하는 일의 목표나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처음엔 저도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기 전에나 뚜렷했지, 지금은 이유 없이 책에 미쳐 있습니다. 억지로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만 이유나 목표와 같은 보상이 필요합니다. 미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이유 없이 미쳐있습니다. 


지인이 묻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미쳐야 할 이유가 있어?"

이제는 다르게 대답합시다. 

"바로 그거야. 그게 내 일의 절묘한 점이지. 이 일에 이유가 있어서 미친다면 감사할 일이 뭐가 있겠어. 핵심은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미치는 데 있는 거야."


"미친놈."



여러분은 어디에 미쳐 있으신가요? 혹시 미쳐 있는 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럼 아직 애쓰고 계신 건 아닌지요. 진정으로 미치고 싶다면, 핵심은 아무런 이유도 없는 데 미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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