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의 존재 이유

서툰 시작

by 공운

맑은 밤하늘 아래 가랑비가 내렸다.

미처 옷이 젖는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의 가느다란 빗줄기가 우리 둘 사이를 적셨다.

작은 우산 아래, 우리는 바짝 붙어 있었다.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나의 시선을 피하는 네가, 무척이나 이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조용한 적막 속 밤길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일 만큼 밝진 않았지만,

가까이 붙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어둠이었다.

지금이 기회일까.

자칫 어긋난 타이밍에 내 마음을 고백한다면, 친구보다도 못한 사이가 될까.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무리 걸음을 아껴 걸어도, 곧 너네 집 앞이 보일 것이다.

이미 수십 번을 더 걸어왔던 길이니까, 잘 알고 있었다.

너의 시선이 내 뺨에 고였다.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네게 들킬까 두려웠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적어도, 이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기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 턱끝까지 할 말이 차올랐다.

애써 붙잡은 용기가 밤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너와 눈을 맞췄다.

가로등 아래, 너의 눈이 나의 설렘까지 담았다.


숨을 참고, 단숨에.

“좋아해.”


이미 내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기도 전에, 빗물과 함께 스며들었다.

너의 어깨에, 혹은 너의 마음에.

나의 고백이, 네가 모른 채 흠뻑 적셔지길 바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빛 아래 발갛게 물든 네 얼굴과,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가장 달콤한 기쁨을 추억한다.

그때의 어린 사랑은, 아무것도 재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랑이었다.


지금도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그날의 공기가 코끝에 느껴진다.

비에 젖은, 은은한 라일락 향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