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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공무원, 일단 멈춰봐...

1년 질병휴직에 들어가다

by 공쩌리


상담사 선생님도 팀장님과 마찬가지로 휴직을 강력히 권유하셨다.


답답했다.


휴직을 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질까?

쉬고 와도, 결국 모든 게 제자리일 텐데.


정말 그만두고 싶은데, 왜 다들 그만두지 말라고만 할까?


온 우주가 나의 휴직을 바라는 것 같았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나의 사직인 것만 같았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뜯어말리는 사직을 감행할 용기는 또 없었다.


# 넌 정신과가 왜 그렇게 싫니?

한참 힘들었던 시기였다.


나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가 근무 중, 사무실 앞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잃었다.

유서도 없어 시청 전체가 집단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했대. 개인 병력 때문일 거야."


근무 중 세상을 떠난 그 선택에는 분명 메시지가 담겨 있었을 텐데,

모두가 개인의 병력으로만 해석해 버렸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나 역시 그 시절에는 근무 중 사무실을 뛰쳐나가 30분 넘게 울고 돌아오는 날이 일상이었고, 무너진 감정 속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까지 머릿속을 맴돌곤 했기에...


그래서 더욱 두려웠다. 만약 나도 정신과에 다니다가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이토록 버텨온 시간들이 결국 ‘개인적인 병력’으로만 정리될 것 같아 억울했다.


# 일단, 병원을 찾다

신과는 나와 타협하지 못해

다른 병력으로 병원을 찾았다.


휴직용 진단서를 받으려면 최소 두 달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매일 폭발하는 감정 속에서 그 두 달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 작은 구원, 추가 상담의 기회


마침, 정부에서 지원하는 무료 상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상담 선생님을 만나며 휴직까지의 힘겨운 나날을 조금씩 견뎌냈다.


상담 내내 선생님께 사직의 정당성을 어필하며 나의 선택을 어떻게든 합리화해 보려 애썼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모두의 만류를 무릅쓰고 사직할 용기가 내게 없다는 것을.


# 뜻밖의 누군가가 위안이 되어주


어느 날, 다른 팀의 팀장님이 메신저로

인사교류에 대해 질문하셨다.


깜짝 놀랐다. 내 인사교류 과정이나 실패와 관련된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팀장님은 교회 지인이 나의 인사교류 상대자여서 이야기를 들었다 하시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덧붙이셨다.

쪽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고였다.


처음이었다. 이 조직에도 이렇게 따뜻한 분이 있다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 맞는구나 싶었다.


그 후 팀장님 식사, 티타임을 종종 함께며 대화했다.


정말 죽으란 법은 없는 건지…

그 시기, 우연히 내게 다가온 다른 팀의 팀장님은 존재만으로도 휴직까지의 시간을 버텨낼 힘이 되어주셨다.


# 우당탕탕, 휴직

두 달의 치료 끝에 진단서를 받았다.


휴직은 처음이라 절차도 제대로 몰랐고, 물어볼 사람은 당연히 없었으며...


공문을 뒤적이고, 인터넷에 검색을 하여 서툴게 휴직계를 올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문 발송 전에 인사팀과 먼저 협의를 했어야 했다.


# 휴직도 쉽지 않네...


진단서를 낸다고 해서 바로 휴직이 되는 게 아니었다.

‘질병휴직 심의위원회’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인사팀 담당자는 진단서 내용을 조목조목 따지며 수정을 요구했고,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진단서 수정을 부탁드리자 불쾌해하셨다.


당연히 그럴 거다. 진단서 작성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 아닌가.

“다른 회사들은 이 내용으로 아무 문제 없이 휴직되는데,

의사 생활 30년 넘게 하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정말, 이 유별난 직장은 뭐 하나 그냥 되는 일이 없다.


# 휴직 4일 전, 여전히 미승인


휴직 예정일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아직도 휴직 허가가 나지 않았다.


온 나라 문서함에는 내 휴직계가 공개되고,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졌다.


모두가 내가 휴직할 걸 알고 있는데, 정작 ‘승인’은 나지 않은 상황.


초조해 미칠 것 같았다.


인사팀에 결과를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성과급 지급 업무로 바빠서 처리를 못 했단다.


온갖 최악의 수를 다 생각하며 맘고생하였는데 단순히 인사담당자 업무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었다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나에게는 일신이 걸린 중대한 일인데...


# 휴직 3일 전, 드디어


휴직 3일 전, 휴직계를 낸 지 한 달 만에 승인이 났다.


그렇게 나는 하루도 더는 버틸 수 없지만

또 사직은 차마 못한 채, 등 떠밀리듯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사 첫날처럼 모든 부서를 돌며 인사를 했다. 안타까워하는 주사님들, 무관심한 주사님들…


나는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 아쉬움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무려 6개월 전부터 준비해 온 훗날 ‘전설의 인수인계서’로 회자된 철저한 인수인계를 남기고 왔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시청 정문을 나오는데, 마치 장거리 마라톤을 완주한 듯 온몸에 힘이 빠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를 걱정한 가족이 그날 데리러 와주어 천만다행이었다.


도저히 저녁밥을 차릴 기운이 없어

집 앞에서 간단히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식사 중, 전혀 예상치 못한 분들에게서

기프티콘과 응원, 감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특히 함께했던 기간제 근로자 선생님의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서도 누군가는 나처럼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해 일했는데,

그 진심이 닿았다는 사실이 내가 견뎌온 시간에 위로와 의미를 더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지도 못한

1년간의 질병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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