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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공무원, 정말. 사직서 제출

- 우울증의 끝에서

by 공쩌리

공무원이었고, 무너졌고, 결국 멈췄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휴직’이라 불렀지만,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정지였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갇혀

나는 매일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 출근템, 삭제

업무 수첩, 검정 슬랙스, 쇼퍼백...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늘 함께였던 것들...

휴직과 동시에 직장과 관련된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쓰레기들 사이, 버려진 'OO시'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업무수첩.

그 모습이 마치 OO시에 대한 내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출근의 상징이자, 지긋지긋했던 그곳의 흔적들.

조금은 과격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끊어내고 싶었다.


#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게 불편하다

모처럼 여유가 생겨 가족과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슬랙스에 셔츠만 돌려 입던 내가 여행을 위한 옷이 필요해졌다.

온라인 쇼핑도 가능했지만, 북적거리는 쇼핑몰에 직접 가고 싶었다.


매일 타던 시청방향의 지하철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 어쩐지 낯설었다.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괴롭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데, 왜 이렇게 불편할까.


며칠간 이어진 쇼핑은 나에게 매일이 시험대 같았다.

마치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오는 느낌.

나 하나,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한 기분이었다.


# 8개월간의 칩거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늦은 오전, 해가 중천에 떴을 즈음에야 겨우 눈을 뜬다.

이불속에서 이런저런 생각과 괴로움이 나를 짓누른다.

몸을 일으킬 힘도 없어, 한두 시간을 더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난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해야지 다짐하지만

해가 저물어갈 즈음, 겨우겨우 공원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못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 나는 실패자인가?

밤이 되면 우울함이 몰려온다.


중소기업에서 받았던 은근한 사회적 무시.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 할까 두려운 공무원 사회.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공무원 조직

거기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나는 루저인가?

인생의 실패자인가?

나는 이제 뭘 하며 살아가야 할까?


2년의 수험생활 끝에 합격했다고 기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친구들을 볼 자신도 없다.


모든 게 끝나버린 것만 같다.

매일매일, 그곳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 깊은 마음의 상처… 아직도 나는 그곳에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묶여 있었다.


주변에서는 여행도 다니고, 좋은 것도 해보라 말하지만

휴직 급여로 깎여버린 소득 탓에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시간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퇴근 후 돌아온 가족과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나는 매일 울었고, 짜증을 냈고, 화가 나있었다.


정말,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 우울증의 끝에서

그렇게, 무려 8개월을...

나는 캄캄한 집 안에서 매일 울었다.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그곳’에 갇혀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점점 침잠해 갔다.


# 사직서를 제출하다

폐인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고...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정말, 사직하기로.


평화로워 보이지만 결코 평화롭지 않았던 휴직 중 어느 날,

나는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정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살기 위해, 떠나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에 메여 있었다.

8개월 동안 몸은 칩거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야 했다.


살기 위해, 이별했다.

버티면 버틸수록 무너지는 건 내 삶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토록 주저하고 두려워했던 퇴사를 선택했다.

사직은 끝이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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