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인사교류 시도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영혼이 부서지고, 존재가 짓밟힌 그 자리.
그곳엔 다시 돌아갈 수 없는데...
사직서는 철회되었다.
그러면... 이제 나는?
# 공무원이기만 하면 된다
중소기업 재직 시 받았던 차가운 사회적 시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디 다녀요?"라는 질문 앞에 움츠러들던 기억.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어딘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과 은근한 무시.
손에 쥔 것도, 내세울 만한 스펙도 없는 내가
그나마 당당할 수 있었던 이름. ‘공무원’.
그래, 어떻게든 공무원이기만 하면 됐다.
# 땅끝이라도 공무원
지방직 인사교류는 3년이 지나야 가능했고,
국가직 인사교류는 제한이 없었다.
일전에 집 근처 국가직 기관의 인사교류는 면접 탈락으로 불발되었기에,
이제는 지방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결심이 섰다.
땅끝이라도 공무원이기만 한다면...
그래, 어디든 가자.
# 지방의 인사교류지를 찾다 – 공주와 고흥
내 직렬로 근무할 수 있는 국가직 기관 두 곳을 찾았다.
하나는 충청도 공주.
세종과 대전 인근이라 어떤 곳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다른 하나는 전라도 고흥.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도를 찍어보니, 정말 ‘땅끝’.
서울에서 무려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거리만 보면 주저할 만했지만, 업무 환경은 고흥 쪽이 훨씬 좋아 보였다.
혼자 훌쩍 떠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가족에게 동의를 구했고,
다행히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평생 살게 될지도 모를 그곳.
직접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고흥으로 답사 여행을 떠났다.
# 고흥 답사여행Ⅰ – 첫째 날, 조금은 불편한...
밤 8시, 무려 일곱 시간의 운전 끝에 도착.
서울에서는 식당이 한창 붐비는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배고픔에 거리를 헤매던 중 영업 중인 식당 한 곳을 찾아 겨우 허기를 채웠다.
밤 9시 40분,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잠옷을 빠뜨린 걸 깨달았다.
근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차를 타고 나와 간신히 찾은 가게도 막 셔터를 내리고 있어 황급히 달려가 옷을 살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고흥에서는 조금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 고흥 답사여행Ⅱ – 둘째 날, 남도의 맛
다음 날 아침, 인터넷에서 유명한 백반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네이버엔 영업 중이라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가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근처의 작은 동네 식당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반찬이 대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다양한 생선들의 향연, 깊은 맛이 우러난 김치찌개, 다양한 밑반찬까지...
손님 대부분이 항구에서 일하는 분들 같았는데,
우리가 쉴 새 없이 “맛있다! 맛있어!”를 연발하는 동안
그분들은 매일 먹는 음식이라는 듯 무심히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 이곳에 내려오면 이런 음식이 ‘기본값’이 되는 걸까?
마음 한구석이 설레 왔다.
# 고흥 답사여행Ⅲ – ‘불편함’ 너머의 발견, 고흥의 진가(眞價)
식사를 마친 뒤, 인터넷에서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그런데 또... 개점 시간이 10분이 지났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다른 카페를 찾아보았지만 프랜차이즈 몇 곳뿐.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 조금 기다려 다시 방문하니, 문이 열려 있었다.
내어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인생 커피를 고흥에서 만나다니!
마침 손님이 없어 사장님께 고흥살이의 장단점부터
내가 가고 싶은 기관에 대한 정보까지 이것저것 여쭤볼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살아 있는 현지인의 생생한 이야기. 예상치 못한 큰 수확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교류 대상 기관도 방문해
방문객 신분으로 둘러볼 수 있는 곳곳을 살피며 분위기를 느꼈다.
2월 말, 서울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었지만
고흥에는 벌써 벚꽃이 피어 있었고, 따뜻한 햇살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고흥이라면 조금 불편하지만 살아볼 만하다’는 결론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 고흥 인사교류, 시도도 해보기 전 불발
하지만, 현실은 늘 타이밍이었다.
마침 상대 기관이 감사 기간에 들어가며 인사교류 신청은 철회되었고
3주를 기다려 다시 진행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상대 기관은 무려 3년 동안 인사교류가 없었던 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교류 대상자의 조건이 나와 크게 달랐던 점도, 교류를 꺼린 이유처럼 느껴졌다.
결국 상대 인사팀의 내부 논의 끝에 불허되었고,
시작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다시 나라일터 철회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고흥은, 잠시 스쳐간 희망으로 끝났다.
# 공주 인사교류, 마지막 후보지에서 맞은 탈락
충청도 공주가 마지막 남은 선택지였다.
마침 상대 교류자와 조건이 나와 복사, 붙여 넣기라도 한 듯 비슷했고,
절차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사교류 면접.
면접관은 네 명. 특수 기관이어서 그런지 질문은 대부분 전문성, 관련 법규, 경력 중심이었다.
시청 외의 경험이 없던 나는, 면접 내내 자격 미달이라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면접이 끝난 뒤 근처의 사택과 도시 곳곳을 둘러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크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고, 바로 이주하더라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주일 후,
예상대로 탈락 소식을 받았다.
세 번의 인사교류 시도,
그리고 두 번째 인사교류 면접 탈락이었다.
공무원이기만 하면 됐다.
땅끝이라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본래 기관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고,
새로운 문들은 모두 닫혀버렸다.
벼랑 끝에 선 지금,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