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직준비, 그리고 뜻밖의…
12개월의 질병 휴직.
그중
8개월은 우울증으로 인한 칩거,
1개월은 인사교류 절차로 흘러갔다.
이제 남은 건 딱 3개월.
사직서를 철회하긴 했지만,
본래 직장으로 돌아갈 자신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인사교류도 더는 갈 곳이 없었다.
내 스펙으로 갈 수 있는 열악한 중소기업들은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휴직기간 석 달은 기술을 배워 새로운 길을 찾자. 그리고 휴직이 끝나는 날엔, 반드시 다른 직업을 갖고 당당히 퇴사하리라.
# 기술을 배우자(!)
취미도, 특기도 없는 사람인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막막했다. 여성발전센터와 문화센터의 강의를 샅샅이 뒤졌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고른 건
한식조리, 영상편집, 부동산과 재테크.
일주일에 여섯 개 강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시간표는 빽빽했고,
나는 다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휘몰아치듯 강의를 들으며 슬슬 진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1. 요리는 내게 재앙이었다. 손재주가 없어 화딱지가 나고,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며칠 만에 강의를 환불했다.
2. 영상편집은 두 강좌를 완강했지만, 프로그램과 감각, 기술 모든 게 버거웠다.
3. 부동산·재테크는 의외로 재미가 붙었다. 네 강의를 연달아 들으며 흥미를 느꼈다. 사실 이 강의를 들은 진짜 이유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며 재산을 불려 나가면 자존감이라도 설 것 같아서였다.
사실상 기술을 배우는 건 실패했고,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아르바이트뿐이었다.
# 휴직 공무원의 <체험 삶의 현장> (?)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치열한 아르바이트로 살아왔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정규직을 거친 후 다시 알바로 돌아간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어진 일만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결심했다. 책임도, 압박도 없이...
마침 지인이 식당을 운영 중이었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점심 피크타임에 며칠간 일손을 거들었다.
휴직 중이라 겸업금지에 걸릴 수 있기에 정식 고용이나 대가는 없었고, 경험을 쌓을 겸 그리고 운동 삼아 몸을 움직인다는 생각이었다.
거의 서빙만 도왔지만, 주방 설거지를 맡은 딱 하루는 잊을 수 없다.
지저분한 잔반들을 손수 모아 산더미처럼 쌓인 것들을 내 키만 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러 가는 길. 봉투는 마치 축축하게 젖은 모래주머니 같았다. 팔이 빠질 것처럼 무거웠고, 몇 걸음 남짓한 거리인데도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악취와 식기세척기의 열기, 그리고 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
그 한가운데, 그것들을 온전히 흡수하며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서 있던 나.
그 순간, 식상한 진리를 몸으로 또렷이 깨달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 식당은 공교롭게도 주민센터 앞에 있었고, 점심시간이면 공무원들이 몰려왔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도 저랬는데. 나도 공무원이었는데.
어쩌다 나는 그 세계에서 이렇게 멀어진 걸까.
가끔 공무원 손님 중 하대하는 이들이 있으면, 유난히 마음이 쓰라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시청 감사팀이었다.
친척 식당에 잠깐 일손을 거들고 있었기에
쓸데없는 상상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문제가 되는 건가 싶어 숨을 죽였지만,
다행히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다.
과거에 잘못 지급된 급여를 환수해야 한다는 안내였다.
전화를 끊고,
서빙과 설거지에 찌든 마음에 묘한 햇살이 비쳤다.
‘아직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구나.’
낯선 안도감이었다.
#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요리와 영상편집은 결국 손을 놓았지만,
부동산과 재테크 수업은 유일하게 끝까지 남았다.
네 개의 수업은 모두 한 선생님이 맡았고,
나는 늘 삼십 분 먼저 도착해 맨 앞자리를 지켰다.
이건 단순한 배움이 아니었다.
내게는 생존의 문제였고,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설령 앞으로 아르바이트로 살아가게 되더라도,
내 존재 가치를 지켜줄 단 하나의 수단이라 여겼기에. 그래서 누구보다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수업에 몰두했다.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절실하게 수업을 듣는지 눈치채셨던 걸까. 어느 날 조심스럽게 사연을 물어주셨고, 나는 오랜만에 ‘진심’이라는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조금씩,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도 말을 섞기 시작했다. 수업 중의 짧은 대화, 수업 후의 밥 한 끼와 차 한 잔.
사소한 교류가 나를 어루만지며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사람을 통해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휴직의 끝이 서서히 보이던 어느 날.
처음 품었던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휴직이 끝나면, 기술 하나쯤은 익혀서 새로운 길을 찾자.
설령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더라도, 재테크로 재산을 불리면 자존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게 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정말 이상하게도
가라앉았던 마음 깊은 곳에서
조금은 낯선 용기가 피어올랐다.
복직, 한번 해볼까?